ADVERTISEMENT

"집 뛰쳐나간 나를 붙잡은 건 할머니 주름진 얼굴에 흐른 눈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오는 7일 성지고를 졸업하는 유비(오른쪽)군이 5일 서울 가양2동 자택에서 할머니 오복진(85)씨를 껴안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군은 “할머니가 없었으면 소년원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유비야. 할미가 많이 아프다. 할미마저 가면 세상천지에 너 혼자다. 부모 없다고 그렇게 막 살면 안 된다.”

 2012년 강도·상해 사건에 연루된 유비(18)군이 재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위암이 담낭까지 전이돼 세 번째 수술을 받은 할머니가 유군을 붙들고 울었다. 유군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는 “할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때부터 정신차리고 공부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 방화동 성지고등학교 2학년이던 유군은 할머니의 눈물을 본 후 한 번도 학교수업에 빠진 적이 없다. 반에서 40등 수준이던 성적도 2년 만에 10등 안쪽으로 훌쩍 뛰었다.

유군은 소년가장이다. 어머니는 유군이 태어나자마자 가출했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유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생활은 늘 어려웠다. 지금도 할머니는 손자에게 그 흔한 컴퓨터 한 대 사주지 못하는 자신을 탓한다. 유군은 할머니와 자신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기초수급자 생계비 42만원으로 생활한다. 그마저도 30만원가량의 집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끼니를 거르는 적도 많아 위궤양을 달고 산다. 이런 숨막히는 현실이 그를 방황하게 했다. 중학교 때는 오토바이를 훔쳐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고, 싸움도 자주 했다. 미용전문고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미용 재료를 살 돈이 없어 꿈을 포기할 뻔도 했다. 할머니와 가양동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유군은 5일 “철없던 시절의 옛날이야기”라며 활짝 웃었다. 유군은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보태면서도 틈틈이 공부해 서울의 한 전문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그는 “빨리 졸업하고 취업해 돈을 벌어서 할머니한테 효도하고 싶다” 고 말했다.

 유군을 포함해 갖가지 사연을 지닌 성지 중·고등학교 학생 509명이 오는 7일 졸업장을 받는다. 성지 중·고등학교는 일종의 대안학교다. 유군 같은 학생들뿐 아니라 70, 80대 ‘노인학생’도 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다닌 김금자(68·여)씨는 평생 배움에 한이 맺혀 중학교에 입학했다. 김씨는 명문대에 다니는 아들의 적극적인 지도 덕분에 졸업장을 손에 쥐게 됐다. 중학교 입학 후 4개 학교를 전전했던 고모(22)씨도 뒤늦게 졸업한다. 고씨는 2011년 성지고에 입학한 뒤에도 교사에게 반말을 하거나 결석을 자주 하는 등 문제 학생이었다. 하지만 교사들의 끈질긴 관심과 보살핌 덕을 봤다. 호텔 조리사가 꿈인 고씨는 재학 중 한식·중식·양식·일식 조리자격증을 모두 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글=채승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