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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믿는 법, 원양어선 타며 배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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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남구(51·사진)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의 첫 직장은 알래스카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이었다. 바다 위에선 아무리 사소한 것도 구할 도리가 없다. 필요한 모든 것이 배 안에 있어야 한다. 미처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이 닥치면 맨몸으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대 청년은 차디찬 망망대해에서 5개월간 매일 16시간씩 고되게 일하며, 위기는 닥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과 위기가 닥쳤을 땐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걸 몸으로 체득했다.

 4일 한투금융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예성저축은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한투금융은 한국투자증권의 모회사다. 현대증권 같은 대형사가 줄줄이 매물로 나오는 와중에 한투금융은 오히려 인수합병(M&A)에 나선 것이다. 적자 내는 증권사가 태반이던 지난해 4분기 320억원 규모의 흑자를 내는가 하면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로부터 2014년 가장 전망 좋은 증권주로 꼽히기도 했다. 희망퇴직과 해고 통보가 일상화된 여의도에서 한투금융만 무풍지대에 있는 듯 보인다.

 이런 경쟁력의 원천은 김 부회장의 원양어선 경험이다. 한투금융은 증권사(한투증권)에서부터 운용사(한투신탁·한투밸류자산), 벤처캐피털(한투파트너스), 저축은행(한투저축은행)까지 다양한 금융업을 한다. 삼성전자가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냉장고에서 스마트폰까지 만든다면 한투금융지주는 운용에서 판매까지, 예·적금에서 파생결합상품까지 만든다. 배 안엔 A에서 Z까지 모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하나가 문제가 생겨도 버틸 수 있다.

 김 부회장의 ‘원양어선 경영론’을 말할 때 빠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 중국이 활황이던 2007~2008년 이야기다. 다른 운용사와 증권사들은 앞다퉈 중국에 진출했다. 한투금융 내부에서도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당시 김 부회장은 “가서 뭘 해서 돈을 벌죠?” 하고 물었다. “태평양에 아무리 고기가 많으면 뭐하겠나. 잡아 올릴 그물과 능력이 없으면 파도에 휩쓸려 짠물만 뒤집어쓰고 올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기 전까진 출항하지 않는다. 이게 바다 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한투증권과 한투신탁의 중국 현지사무소는 2009년 이후에야 설립됐다.

 그의 경영론은 용인술에서도 묻어난다. 선장에서부터 허드렛일을 하는 선원까지 한번 배가 뜨면 이들은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다. 만선을 이뤄 안전하게 회항하자는 목표를 나눠 가지고 서로를 신뢰해야만 한다. ‘2년을 버티기 어렵다’는 증권업계에서 유상호 한투증권 대표가 8년째 연임 중인 건 그가 김 부회장의 배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른바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이 장을 이끌던 2011년에도 가치투자 원칙을 고수하며 마이너스 수익을 내던 이채원 한투밸류자산 부사장을 믿어준 것도 김 부회장이다.  

출항한 배 위에서 발휘하던 결단력과 추진력은 M&A DNA가 됐다. 동원그룹은 한신증권을 인수하며 증권업에 진출했고 2005년 한투증권을 통합하며 성장의 기틀을 잡았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이 악화된 안흥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알짜 저축은행으로 키워내기도 했다.

 김 부회장의 꿈은 한투금융을 아시아 최고의 금융사로 키우는 것이다. 그러자면 지금껏 만난 바람보다 더 센 바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각 대학 채용설명회를 직접 찾아다니며 70여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 남들은 희망퇴직자를 받는 와중에 몸집을 불린 셈이다. 그의 아버지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은 “순간 풍속은 평균 풍속보다 훨씬 빠르다. 1t을 견디려면 5t은 견딜 수 있게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는 지금 5t은 견딜 수 있는 한투금융호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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