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를 받게 된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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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무원의 봉급수준을 인상하여 생계비선 이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는 소리는 결코 작금에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11일의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는 10월부터 30%만 인상하기로 결정되었다 한다. 30%인상에 연말「보너스」를 1백% 주기로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40%정도의 인상이 보장된 셈인데 하나의 낭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공무원봉급의 인상이 연간 l천7백4억원 이라는 방대한 재정지출을 소요케 하는 반면, 그 정도의 인상으로써 공무원들의 소득이 과연 생계비 수준에나마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는 근본적으로 의문이다.
금년 1월∼3월간의 서울시 근로자 가구가 지출한 월간 생계비 평균은 5만3천3백40원인데 공무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5급 공무원의 봉급은 30%인상 후에도 고작 2만5천원 대이며, 이에 직책수당을 5천원 정도 보태도 3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이로써는 최저한도의 생활마저 영위하기 힘들 것은 불문하지이다. 게다가 금년 들어 6월말까지의 소비자물가 지수는 15.8%, 도매물가지수는 31.3%가 올랐다고 하니 그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보면 4·4분기에 30%인상하는 것은 현상유지조차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봉급수준 때문에 하급 공무원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부득이 부정을 저지르기 쉽게 되고, 고급공무원의 경우는 더욱 큰 부패에 물들기 쉽게 되는 것이다. 중앙청과장급인 3급 공무원의 월급이라야 30% 오른 뒤에도 월5만원 정도 밖에 안돼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창 출 비가 가장 많을 40대 국장급들의 봉급도 매 수령액이 월8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니 자녀교육비 등을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지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저임금 때문에 먹고 살 수 없는 청렴한 공무원은 자진 퇴직하여 봉급수준이 월등 높은 사기업체로 가게 마련이요, 그러지도 못하는 사람은 굴러 들어오는 돈이나 이권을 뿌리치지 못하고 본의 아닌 유혹의 수렁에 빠져들기 쉬울 것이다. 이런 경우 먹고살기 위한 부패나 부정행위라고는 하지만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처럼 점차 대형화하여 급기야는 숙정을 몰아오게 되는 것이다.
정부도 연초에 관기 숙정작업을 단행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봉급을 생계비 수준 이상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예정하고 있는 것처럼 30%정도만 올리면 이들에게 돌아갈 실질적 혜택은 거의 없게 될 것이므로 정부는 차제에 보다 획기적인 용단을 내려야 할 처지에 서게 된 것이다.
세계각국의 사회보장의 최저기준은 생계비를 감안한 면세점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국에서는 역소득세 제도(네거티브·댁스)를 도입하여 면세점 이하의 사람들에겐 생활보호비까지 지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조차 면세점인 5만원에 훨씬 미달한 현상을 언제까지나 그대로 방임해 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특히 민간기업체에 대해 고용원의 봉급인상을 종용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그 예하에 있는 공무원들의 봉급부터 현실화의 시범을 보여야만 모든 민간기업에도「인센티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의 봉급이 생계비에도 미달하는 경우 대민 봉사가 나빠지며 품위를 손상하게 될 것은 물론이다. 공무원이 불친절해지고 대민 봉사 의욕이 없어지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을 때 그 나라가 잘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 처우의 근본적인 개선을 가능케 하위 기해서는 먼저 대폭적인 기구감축과 이에 따른 감원을 실시하고 모든 정부기능을 의욕적인 소수 모범공무원들로 하여금 수행케 하는 획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전체 정부 예산중 19.7%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개개 공무원에게는 실질생계비에도 미달하는 박봉을 지불해야 하는 모순은 단연코 시정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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