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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의 지주…페로니즘 퇴진|페론 사거 후의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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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년의 망명 생활 끝에 작년 9월 대통령직에 복귀한 「환·페론」「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집권 10개월만에 사망함으로써 「아르헨티나」 안정의 상징이던 「페로니즘」은 그 지주를 잃고 이 나라는 새로운 혼란으로 빠져들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페론」의 세력 기반이었던 노동 총 연맹 (CGT)과 「페론」파인 여당 정의당을 비롯하여 급진당·좌파·군부 등은 그의 부인 「이사벨」 여사를 헌법이 인정하는 대통령 후계자로 지지할 것을 서약했지만 정치적 경험이 전혀 없는 「이사벨」이 대통령으로서 분열된 「페론」파를 결속하고 만성적인 「아르헨티나」의 「인플레」를 타개하리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랜 망명 끝에 상징적 지도자로 귀국한 「페론」이 그 상징성을 명확한 행동으로 구체화하지 못하고 「페로니즘」 내용을 망명 생활 때와 마찬가지로 모호한 상태에 내버려 둔데서 비롯된 것이다.
「페로니즘」을 대변하는 정의당은 「파시스트」에서 좌파까지 상극되는 세력을 포용하고있는가하면 「페론」은 귀국 이후 『공화 체제에 반대하는 사상을 금한다』는 이유로 우파의 축출을 언명한 바도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를 위해 뚜렷한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잡다한 「페론」 지지파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외견상 단합한다하더라도 분열의 씨는 이미 잉태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또 「페로니즘」의 골자인 국가주의 경제 정책은 「아르헨티나」 최대의 압력 단체인 노동 총 연맹과 서민들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아르헨티나」안의 대기업들은 민족 자본 육성에 의한 민족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페론」의 중도 개혁 노선에 반발해 왔다.
특히 「페론」이 망명한 55년부터 73년까지 실권을 장악해 왔던 군부는 18년간 11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혼란과 이로 인해 빚어진 국민의 압력으로 「페론」 복귀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아르헨티나」가 다시 불안한 상태로 빠진다면 이들 군부는 또 정치에 개입할 구실을 얻게 될 것이다. 「페론」 이후의 혼란 속에서 가장 뚜렷한 압력 요인은 따라서 군부의 동향이 아닐 수 없다.
남미의 사자로 불리던 「아르헨티나」의 영웅 「환·페론」은 1895년10월8일 「붸노스아이레스」 주 「로보스」에서 출생했다. 그는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전술 교관을 역임한 뒤 「칠레」 주재 무관을 지냈다. 1943년 친 축국 지하 장교 단체에 가입했고 이「그룹」이 「쿠데타」에 성공하자 노동상이 되었다.
46년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노동자·농민을 위한 경제 정책으로 「페로니즘」을 확립, 국내외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과격한 정책으로 중산층 및 군부·학생, 특히 「가톨릭」교회와 불화 했고 55년 군부 「쿠데타」로 「스페인」에 망명했다. 그 동안에도 꾸준히 「페론」 운동을 지도, 작년 9월 18년만에 귀국하여 재집권했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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