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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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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4년 1월 16일자 30면>
청년 실업 해소,‘안녕들 한 사회’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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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3년 만에 다시 8%대로 진입했다고 한다.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모두 33만1000명으로 청년 실업률은 8.0%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은 지난 2009년 8.1%에서 2012년 7.5%까지 떨어지다가 지난해 다시 0.5%포인트나 급등한 것이다. 특히 전체 실업률이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0.1%포인트 낮은 3.1%를 기록했고, 청년층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실업자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청년 실업의 증가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급등한 이유는 청년 구직자는 늘어난 반면 실제로 일자리를 얻은 취업자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청년층 취업자는 지난 2000년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데 급기야 지난해에는 379만3000명으로 1980년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일하는 젊은이가 비율뿐만 아니라 절대 숫자까지 줄어든 것이다. 반면에 50, 60대 중노년층 취업자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전체 고용률이 소폭이나마 늘어나고 있는 이면에는 이처럼 ‘청년층 고용 감소-중장년층 취업 확대’라는 고용구조의 악화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유일한 수치목표로 제시한 고용률 70% 달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청년 실업이다. 이는 거꾸로 전체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청년 실업의 해소(청년 고용의 증대)가 핵심적 과제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청년들에게 번듯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고는 고용률 제고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중노년층에게나 적합한 시간제·임시직 등 허드렛일자리만으로는 결코 고용률을 안정적으로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와 창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마침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투자와 창업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겠다고 했다. 제발 그 다짐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청년 실업자 통계는 우리 젊은이들이 왜 ‘안녕들 하지 못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겨레<2014년 1월 16일자 35면>
청년 고용률 30%대, 특단 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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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사정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3년 고용률(15~64살 기준)은 64.2%를 기록했다. 2012년에 비해 0.2%포인트 상승한 것이지만 직전 3년의 연간 고용률 상승폭(0.4~0.5%포인트)에 비해 오히려 증가세가 꺾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첫해인 지난해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며 11조여원을 일자리 창출 관련 사업에 쏟아부었지만 별 신통한 효과를 보지 못한 셈이다. 좀 더 실효성 있는 일자리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최악의 상황에 이른 청년 실업에 대해서는 특단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청년층(15~29살) 고용률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2년 이후 가장 낮은 39.7%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이후 청년 취업자가 다소 늘고 있기는 하지만 올해라고 크게 나아질 것 같진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 고용률이 최악인데도 한쪽에선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도 있는 만큼 마냥 경기가 나아지길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들 간의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는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는 등 더욱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청년 고용 확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대 간 고용률 격차 확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지난해 청년층 고용률이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진 반면 60살 이상 노령층 고용률은 전년보다 0.9%포인트 오른 38.4%를 기록했다. 전반적인 고령화 추세에 따른 정년 연장의 결과지만, 노후 생활이 불안정한 노인층이 경제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영향도 크다. 이에 따라 노인층이 청년층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게 아니냐는 세대 간 일자리 논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몇몇 직종을 제외하고는 노인층과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의 성격이 달라 경합관계라기보다는 보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세대 간 일자리 상생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기업 내의 임금·인사체계 개편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고용률 못지않게 고용의 질도 중요하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각종 고용 확대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력단절 없는 일·가정 양립’을 내걸고 다양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육아나 가사 때문에 해오던 일을 중단한 여성들에게 다시 일자리를 갖게 하는 건 적극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쓸모없는 일자리만 늘리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런 일자리는 환영받지도 못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논리 vs 논리
중앙 “규제 풀어 일자리 창출” 한겨레 “세대 간 일자리 나누기”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통계청의 2013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8%에 달한다. 지난해보다 무려 0.5%포인트 급등한 것이다. 이는 단지 경제불황 탓만은 아니다. 전체 고용이 소폭 늘어났고 60세 이상 노령층 고용률은 전년보다 0.9% 올랐다는 점을 보면 청년 실업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불거진 것이라 하겠다.

 이 점에 있어서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인식을 같이 한다. 한겨레는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청년 일자리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면서도 “청년 고용률이 최악인데도 한쪽에선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도 있는 만큼…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는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중앙일보도 “청년층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실업자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청년 실업의 증가는 더욱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적시하며 “중노년층에게나 적합한 시간제·임시직 등 허드렛일자리만으로는 결코 고용률을 안정적으로 높일 수 없다”고 말한다.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처방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두 사설은 의견을 함께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확연하게 갈린다. 중앙일보가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는다면, 한겨레는 ‘일자리 상생’에 더 강조점을 두는 모양새다. 중앙일보는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와 창업’으로 생길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와 창업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반면 한겨레는 구직자와 구인 기업 사이의 불일치, 젊은 층과 노인층 사이의 ‘세대 간 일자리 상생’ ‘여성의 경력단절 없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문제 해결의 키워드로 앞세운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입장 차이는 1930년대 미국에서 벌어졌던 ‘8시간 대 6시간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후버 대통령은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운동을 펼쳤다. 공황 시기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후버는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면 기업들이 그만큼 더 사람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노동자 개개인의 수입은 다소 줄어든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사회 전체가 누릴 혜택에 비하면 참아낼 만하다고 여겼다.

 반면 후임자인 루스벨트 대통령 생각은 전혀 달랐다. 뉴딜 정책을 펼치며 적극적인 투자로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을 편 것이다. 루스벨트는 물건이 안 팔리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면 된다는 식으로 경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후버의 일자리 나누기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에 대한 평가는 미국 경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뉴딜 정책은 미국 경제가 대공황을 탈출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일자리 쏠림현상은 더 심해졌다.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의 근무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더 많이 일할수록 소득이 늘어나는 까닭이다. 반면 취업하지 못한 이들은 하는 일 없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지금도 이런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한다. 여기서 살아남은 이들의 노동 강도는 점점 강해진다. 반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자들은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다. 양쪽 다 삶의 질은 점점 낮아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자리 나누기’와 ‘기업의 투자와 창업을 위한 규제 완화’ 가운데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현실은 흑백논리로 해결되지 않는다. 성장 없는 일자리 나누기는 가능하지 않다. 한겨레도 이 점을 분명히 짚고 있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가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늘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하지 않던가. 중앙일보 또한 “청년층 고용 감소-중장년층 취업 확대라는 고용구조의 악화현상”을 비중 있게 다룬다. 성장 없는 분배 없고, 합리적 분배 없는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두 사설 모두 공감하는 셈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

 하지만 정책 방향을 정할 때는 우선되는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자리 상생’이 바람직할까, ‘기업의 투자와 창업을 위한 규제 완화’가 효과적일까.

이달 말에는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나올 예정이다. 정부는 과연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

▶다음 주 논점 북의 상호 비방 중지 제의
2월 11일자에는 북한이 제의한 상호 비방 중지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김기태 호남대 교수의 비교·분석 글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