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과 시장기능 문명사적으로 본 현재와 미래|「로버트·L·헤일브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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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도로 개발된 난해한 현대경제이론만으로 경제발전에 따른 제 문제를 분석하고 대처하는데 미흡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이와 반작용으로 미「로스토」교수의 『경제성장의 제 단계』가 나왔다. 이와 동궤의 연구로서 미「로버트·L·헤일브르너」교수의 『경제발전과 시장기능』은 일종의 문명사적 입장에서 경제발전을 파악·전망했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헤일브르너」교수는 미 경제학자로서 경제이론·경제사·경제학사를 풍부히 구사하여 경제발전문제에 독특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론과 역사의 교착」에 의해 비「마르크스」적 견지에서 경제사회의 발전을 종합파악, 경제학에 연결시킨다는 방법이다. 저서엔 다음에 일부 소개하는 『경제사회의 형성』외에 『경제사상사』『아메리카 자본주의』『역사로서의 미래』등이 있다.【편집자 주】
경제발전과정에 있어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정도의 강약은 있지만 경제의 계획화가 시장제도를 점차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기능에 경제를 맡기는 일은 없어졌다. 모든 경제체제를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로 획일적으로 양분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서로 접근되고 있는 것이다.
계획경제에서는 확정된 목표를 원활히 달성하기 위해 시장제도가 도입되고 시장경제에서는 사적활동을 질서·안정·사회적 목표의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계획화가 요구된다. 이른바 경제적 제 기구의 수렴화 경향인 것이다.
물론 경제적 제 기구의 수렴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자본·사회 양 제도간의 기본적 구별이 말살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과 그 행사·정치제도 등은 그 근저에 있는 경제제도에 영향은 받지만 전적으로 그것만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교과서적 「모델」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산물이며 독자적인 국민·개성·전통·신앙을 갖고있다.
현재 세계는 최고로부터 금일까지의 경제사의 전 단계를 나타내는 사회조직이 혼거 하고 있다.
전통사회로부터 반 개발경제·고도소비경제가 동시에 존재한다. 경제발전의 몸부림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저개발국의 주요한 추진력은 시장제도보다 계획제도인 것 같다. 그렇다고 시장제도가 아주 효용을 잃은 것은 아니다.
소련과 같은 계획사회에서 계획경제에 따른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시장기구가 대두하고 있는 것과 같이 미국 등 선진적 시장사회에서도 그 고유의 목표설정 상 약점 때문에 계획화가 대두되고 있다. 양자는 서로 보완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성장의 기폭은 정치적 자극을 필요로 한다. 과거 서양은 중상주의가 그 자극이었다.
오늘날은 계획경제 바로 그것이 사회를 움직이고 경제성장을 작동시키는데는 시장보다 유용할지 모른다. 계획경제는 거대한 경제적·사회적 재편성에는 적합하나 고도생산경제를 원활히 통합·운영하는데는 부적하다. 관료제의 비능률성, 사적이해와 공공적 요구의 조화결여는 계획화기구의 난점으로 나타난다. 바로 여기에 시장 제도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는 것이다.
소련과 같이 반 개발경제는 계획과 시장제도의 혼합이 특징이다.
고도소비경제는 당연히 시장의 유도에 적합하다. 그러나 이 경제는 시장이 공공적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결함이 있다.
이제 까진 생존의 문제가 사회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사실 현재도 후진성의 탈피가 절실한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장차 고도로 발전된 사회에선 가장 중요한 문제로 존재의 경제적 측면과 인간생활전체와의 새로운 관계창조가 대두할 것이다.
우선 풍요의 달성은 인간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것이다. 즉 기존 가치관을 전제로 해서 형성된 개인의 행동에 대한 시장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활동의 수행을 보증하기 위해서 무언가 별도의 사회적 통제 수단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또 과학기술의 발전은 경제가 의존하고 있는 기본적 관계, 즉 자연과 인간관계를 바꾸어 노동개념자체를 변모시킬지 모른다. 과거엔 더했지만 아직 까진 노동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부담으로 인식된다. 또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 전제조건으로서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의 필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이는 노동시간의 감소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앞으론 경제활동이 압도적 대다수의 기능이라기보다 소수자의 기능이 되어 노동이 하나의 특권이 될지 모른다. 이는 시장제도에 전례 없는 문제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시장기구의 쇠퇴는 모든 경제적 제어 기구의 변화를 의미한다. 노동의 필요가 쇠퇴되고 풍부함이 달성된 사회에서의 경제문제는 부의 축적에서 관리로 넘어갈 것이다. 이 경우엔 인간이 물재를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든 현재와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전통적 시장기능이 쇠퇴할 것은 틀림없고 장래의 질서 있는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선 생산과 분배를 조정하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할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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