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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전쟁 경보] 2. 프랑스·독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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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 시점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유로지역의 주요 국가들도 전쟁 발발에 대비한 비상 경제대책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그동안 전쟁에 강력히 반대해온 독일과 프랑스 등 일부 국가들은 벌써부터 이라크전 종료 후 복구사업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등 철저한 정경분리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장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17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는 이라크 전쟁 발발에 대비해 경제보호 및 안전강화 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라파랭 총리는 이 비상계획의 세부사항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라크 전쟁의 경제적 여파에 대비한 고용 안정과 자국경제 보호▶인종주의 및 반 유대주의 위협에 대비한 경보 체제 등이 골자라고 설명했다.

총리의 지시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이라크전 장기화에 대비한 구체적인 경제대책을 마련 중이다.

원활한 원유 수급이 최우선 목표다. 1996년 유엔의 대 이라크 제재 완화에 따른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프랑스는 이라크로부터 수입되는 저가 원유의 덕을 톡톡히 봐왔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단기적인 원유공급 대책을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이 예상대로 이라크전에서 완승을 거둬 종전의 기득권을 상실할 때에 대비한 중장기 원유조달 계획도 함께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부양 계획도 마련되고 있다. 이라크전에 대한 우려로 프랑스 경제는 현재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10년 만에 최고 수준인 0.7%였고, 실업률이 1월말 현재 9.1%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이뤄지는 최악의 경우인 스태그플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공공물가 통제와 일자리 수 증대에 힘을 쏟고 있다.

일단 유사시엔 예산을 동원해 경기부양에 나선다는 방침 아래 재정적자 예상 규모도 국내총생산(GDP)의 2.6%에서 3.4%로 늘려 잡았다.

한편 정부의 비상대책 마련과는 대조적으로 프랑스 기업들은 전후복구 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가 전후 이라크 복구 사업에서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유전개발이다.

미셸 알리오마리 프랑스 국방장관은 지난 16일 "미국이 국제사회가 인정치 않는 전쟁을 강행하더라도 전후 복구 사업은 국제사회가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더라도 전후 돈벌이에서는 배제되지 않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라크와 70억달러 규모의 유전개발 협상을 진행 중인 프랑스는 이라크의 새 정권이 기존의 석유개발권을 무효로 할 경우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독일=유럽의 경제대국인 독일은 이라크전을 앞두고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지난 14일 "이라크전에 대비하고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연방 및 지방정부사업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건설업계와 지방자치단체에 총 1백70억유로(약 23조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경기침체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해 75억유로를 지원한다는 것이 부양책의 골자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독일경제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통일 이후 2000년에 반짝했던 독일 경제는 9.11사태를 계기로 악화일로에 있다. 고실업.저성장으로 디플레이션 조짐마저 보이는 상황이다.

지난달 실업자수는 5년 만에 최고치인 4백70만명을 넘어섰다.

하향조정을 거듭한 올 경제성장 전망치는 최근 0.4%(Ifo 연구소)까지 떨어졌다. 얼마 전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전망치는 1% 선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제2의 일본'이 된다는 위기감이 이라크전을 앞두고 국민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의 경제전문가들은 "이라크전이 독일정부가 그동안 망설여온 대대적인 경기부양책 마련을 촉발시킨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라크전에 극력 반대해온 독일이지만 전후 이라크 복구에는 군침을 흘리고 있다. 현재 건설업체 등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다각도로 유정복구사업 등 건설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또 지멘스.아에게 등 소비재 업종의 다국적 기업들은 전후 이라크 소비재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베를린.파리=유재식.이훈범 특파원

<사진설명>
지난주 독일 DAX 지수는 이라크전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최근 8년간 최저치까지 하락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주식중개인이 지난 12일(현지시간) 하락하는 주식 시세판을 보면서 통화하고 있다.[프랑크푸르트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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