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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냐 사임이냐 기로에 선 닉슨|공식청문회개막과 미국의 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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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미국하원법사위원회는 7개월간의 예비조사를 끝내고 9일「닉슨」탄핵에 관한 공식청문회의 막을 올렸다. 1868년「앤드루·존슨」의 탄핵재판 이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미국사람들의 고통스런 정치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탄핵재판은 미국인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니까「닉슨」사임으로 그런 비극적인「서커스」만은 그만두자는 여론도「닉슨」을 사임토록 설득하지는 못한 것이다.
탄핵재판에서 승산이 있다는「닉슨」진영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막상 법사위의 심리가 시작된 지금의「워싱턴」의 분위기는「닉슨」의 정치적 탄핵을 예고하는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닉슨」의 주장과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는 백악관의 선전은「닉슨」사임이나 탄핵을 요구하는 무리는 일부 자유주의 분자들뿐이고 이른바「말없는 다수」(사일런트·머조리티) 는「닉슨」의 결백을 믿고 그의 탄핵이나 사임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닉슨」은 의회법원, 그리고 언론의 머리 너머로「국민」이라는 이름의 대 배심원을 상대로 자신의 결백을 호소해왔다. 여론을 휘어잡기 위한 전국유세를 강행한 것도 이러한 발상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주의 녹음테이프 사본의 공개는「닉슨」에게 결정적 파국을 몰고 온 것으로 보인다.
「닉슨」은 자기가 문제의 73년3월21일 이전에「워터게이트」사건을 몰랐다는 사실은「트랜스크립트」가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그 녹음사본을 읽고 자유주의적인 신문들의 사설에서만 들어오던「닉슨」대통령의 도덕적 권위의 타락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된 것이다.
73년 3월 21일 있었던「존·딘」과의 대화 하나만 보아도「닉슨」대통령이 사건을 언제 알았느냐에 관계없이 그가 사건의 은폐를 위한「허쉬·머니」(입을 틀어막기 위한 돈) 지불을 사실상 승인했다는 것을「닉슨」의「대 배심원들」은 소상하게 읽게된 것이다.
결국 녹음사본의 공개는「닉슨」을 구원해주지 못했고 도리어 사임이냐, 탄핵이냐의 양자택일을 해야할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법사위심리가 시작된 9일 하루만 해도 의회에서 가장 강력히, 그리고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닉슨」을 옹호하고 탄핵 안에 반대할 것으로 보이던 사람들이「닉슨」에게 등을 돌렸다.
하원 공화당 의원총회회장「존·앤더슨」의원은「닉슨」의 조속한 사퇴만이 미국의 이익이 된다』고 선언했다.
「앤더슨」의원은 지난주 공개된 녹음사본으로「닉슨」이「워터게이트」사건에 깊숙이 관련됐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지금의 하원분위기로 보아서는 탄핵결의안이 통과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원 공화당원내총무「존·로드」의원도 같은 날『「닉슨」은 이제 사임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전제,『지금까지는 51대49% 정도로「닉슨」이 탄핵 안의 부결전망이 컸지만 녹음사본 공개 이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날「포드」부통령까지도 백악관의 녹음테이프문체 처리를 신랄하게 비난하고『「닉슨」은 결백하다』고 하는 지금까지의 주장은 생략해 버렸다. 녹음테이프에 관한「닉슨」진영의 가장 심각한 자중지란은 공화당상원 원내총무「휴·스코트」에게서도 나왔다.
「스코토」의원은 녹음사본은『개탄할 만하고 비열하고 구역질나고 부도덕한 처리』라고 규탄,「닉슨」의 정치적 장래에 흙탕물을 퍼부었다.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의 타락은 탄핵의 근거는 안될지 몰라도 국회의원들이 탄핵 안에 손을 들고 안 들고 하는데 에는 결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닉슨」사임을 재촉하는 최강의 압력요소가 되는 것이다.
백악관에서는 여전히「닉슨」이 대통령은 사임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고「닉슨」의 법률고문「제임즈·샌·클레어」는 탄핵 안은 부결된다고 장담하고 있다.
「닉슨」은 심지어 6월에 소련방문을 예정대로 하겠다고 까지 말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사고있다.
본국에서 탄핵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판에 그가 소련을 방문, 「브레즈네프」를 상대로 무슨 흥정을 하겠다는 말인 가고 미국인들은 심각한 표정들을 짓는다.
민주당의 하원원내총무「토머스·오닐」의원은 탄핵 안이 하원본회의에서 50내지 l백표 차이로 통과될 것으로 예언했다.
지금은 법사위탄핵결의안은 으레 통과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탄핵 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비록 칼자루를 쥐고 있다해도「닉슨」을 탄핵으로까지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는 여전히 유력하다.
▲미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몰아낸 정당이란 나쁜「이미지」를 국민에게 주게되고 ▲「애그뉴」전부통령이 사임 후 동정을 받았듯이 사임한「닉슨」이 국민들의 동석에 힘입어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 진보 파에 복수전을 벌인다면 장기적으로 민주당의 전략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민주당이「닉슨」을 탄핵으로까지는 몰고 가지 않으리란 근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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