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범죄 허위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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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천금을 노렸던 꿈은 허황되게 깨지고 사악의 손들에는 쇠고랑이 채워졌다.
도피행각 2백33시간만에 자수한 농협주안예금취급소 공금횡령사건의 주범 박항준대리와 김명희양은 자신들이 저지른 엄청난 죄과를 뉘우치기는커녕 『빼돌린 돈을 들치기 당했다』 고 거짓자백, 다시한번 경찰과 국민을 우롱했다.
이번사건은 이제까지 행원들의 손으로 저질러진 어느 부정사건보다도 그 규모가 크면서도 고도로 지능적이고 전문적인 수법을 대담하게 활용한데다 인사행정의 난맥등 금융계에 깊이 도사린 부조리를 범행의 구실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특징지어지고 있다.
박대리는 도피중 공범 조규석씨를 시켜 부산에서 띄운 편지에서도 『내가 빼낸돈은 그동안 노력의 댓가일뿐』이라고 말했듯 자수한 뒤에드 『내마음을 아프게 한자들의 마음도 나만큼 아프게 하고싶어 범행했었다』고 태연스럽게 동기를 밝혔다.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거나 뉘우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박씨와 김양을 신문한 수사관들은 이들의 범행동기가 금전만능의 퇴폐적인 풍조를 타고 언제나 돈과 가까이 있는 은행원들 사이에 빈번히 일어나는 다른 은행부정사건의 경우와 조금도 다른 점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사실은 박대리가 챙겨 달아난 돈으로 1천만원이 넘는 양옥을 사들이고 3천8백여만원을 시중은행에 가공명의로 예금, 비밀리 빼들려 놓고도 들치기를 당한 것처럼 조작극을 벌이고 거짓진술을 일삼아 돈에 대한 끈질긴 집념을 나타낸 것으로 뒷받침 된다고 수사관들은 지적했다.
지난 한햇동안 5억원의 예금실적을 올린 박대리는 예금유치를 위한 교제비로 쓰기위해 1천5백여만원의 공금을 횡령하고 실적을 올리기위해 하오11시까지 뛰어다니는등 수단을 가리지않는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한 수사간부는 박대리가 공금횡령을 위한 필요성때문에 예금담당계원인 김양을 유혹, 범행에 가담시기고 범행이 탄로나자 주위의 동정을 사기위해 인사불만과 사회부조리에 대한반발을 범행동기로 내걸었다고 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건은 창구의 일개여직원과 담당대리가 막음대로 계수를 조작, 이같은 엄청난 돈을 감쪽같이 빼낼 수 있도록 된 은행의 출납업무·전표취급·장부기장·조회·회보업무등 업무자체의 헛점을 드러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대리와 함께 달아났던 김양은 지난달초부터 가공명의로 자기앞수표를 남발, 하수인을 시켜 시중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꿔냈다.
시중은행에서 주안예금취급소로 확인 전화가 오면 합법적인 수표처럼 회보를 하고 어음교환소로부터 되돌아오는 수표는 김양이나 박대리가 받아 찢어 없애는 수법을 써왔다.
이같은 은행부정사건은 금융가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은행측은 은행의 체면이나 공신력에 미치는 앙향을 고려, 액수가 대단치 않을때는 자체안에서 쉬쉬하며 얼버무러 오는 것이 상례처럼 되고있다.
이때문에 노출되는 부정사건은 빙산의 일각으로 보여진다. 이같은 미온적인 사건처리와 제도보완등 근본적인 대책의 결여가 부정을 만성화하고 대형화하는 요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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