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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욕심과 추측보도가 키운 '박지성 복귀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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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박지성(33·에인트호번)의 표정은 시종일관 덤덤했다. 가끔 웃기도 했지만, 즐거워서라기보다는 자조의 뜻이 더 컸다.

 23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만난 그는 “2011년 은퇴 선언 이후 내 생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표팀 복귀 가능성은 0%”라고 했다. “(홍)명보 형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시점에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내 마음도 편치 않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신년 축구계를 뜨겁게 달군 ‘박지성 복귀 논란’은 당사자인 박지성과 홍명보(45) 축구대표팀 감독이 주인공이 돼 만든 이야기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의 욕심과 지나친 관심, 그리고 일부 언론의 근거 없는 추측보도 등이 맞물려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시작부터 꼬였다. 줄곧 “박지성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던 홍 감독이 돌연 “직접 만나 복귀에 대한 생각을 확인하겠다”며 태도를 바꾼 건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었다. 축구계의 한 관계자는 “축구협회 고위층 인사가 홍 감독에게 박지성과의 대면을 종용했다. ‘박지성이 대표팀에 합류하면 경기력뿐만 아니라 흥행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이 면담 의사를 밝힌 이후엔 일부 언론이 ‘컴백과 관련해 박지성과 홍 감독이 사전에 교감을 이룬 것 아니냐’며 추측보도를 쏟아냈다. “설득하겠다는 게 아니라 의견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라는 홍 감독의 설명도 소용 없었다. 축구팬들의 기대감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자 급기야 박지성의 부친 박성종씨가 “아들은 대표팀에 복귀하지 않는다”며 서둘러 선을 그었다. 박지성이 중앙일보를 통해 ‘컴백 가능성 제로’라고 못박자 이번에는 ‘박지성-홍명보 갈등설’이 등장하는 등 일부의 무분별한 보도 행태는 사라질 줄 모른다.

 이번 논란의 후폭풍은 고스란히 홍 감독과 박지성이 안게 됐다. 박지성의 측근은 “지난 10년간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한 박지성이 일부 팬들로부터 ‘책임감이 없다’ ‘결혼 등 개인사를 위해 국가의 부름을 외면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홍 감독 또한 특유의 카리스마에 흠집이 생겼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두 영웅, 박지성과 홍명보.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힘을 합쳐 브라질 월드컵에서 기적을 연출하는 건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시나리오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실현하기 위해 두 사람의 손을 강제로 잡게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들의 영웅이 더 이상 일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떠나는 이를 웃으며 보내주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송지훈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