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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역발상으로 위기 탈출구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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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가 1조 1000억원을 들여 2006년 미국 조지아 주 웨스트포인트시에 세운 기아차 조지아 공장. 연간 36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췄으며 지난해 누적생산량 100만대를 돌파했다. 차체공장 라인에서 로봇들이 이음새 부분을 용접하고 있다. [사진 기아자동차]

정부는 2014년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주요 수출국인 미국의 경기가 호전되고, 국내 기업들의 투자도 살아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가까운 3.9%로 회복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새해 첫날 발표한 ‘2014년 수출입 전망’에 따르면 올해 수출과 수입이 지난해에 비해 각각 6.4% 및 9.0% 늘어나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전체 무역 규모도 전년 대비 7.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열린 올해 첫 경제장관 회의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잠재성장률 4%,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달성을 위한 기반을 앞당기겠다”며 “고용률 70% 달성과 청년·여성 일자리 확대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단위로 내려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삼성과 현대자동차·SK·LG 등 주요 대기업 그룹들은 올해를 위기로 진단한다. 세계경제가 호전된다 하더라도, 기업이 이를 체감하려면 아무리 일러도 연말은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주요 대기업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에는 이 같은 위기의식이 그대로 묻어난다. 위기를 넘어 더 큰 미래로 나아가자고 호소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며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고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최근의 세계 경제는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업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기술의 융복합에 따른 산업의 변화로 불확실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사업 구조와 중장기 성장 전략을 더욱 체계화하고, 보다 혁신적인 제품과 선행기술 개발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위기 의식과 이에 대한 응전을 동시에 강조한 것이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신년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 회장은 “앞으로의 경영 환경은 위기 그 자체”라며 “앞서 나가던 기업들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기회를 놓치고 아성마저 무너지고 말았다”고 수차례 위기를 강조했다. 구 회장은 “임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매년 새해를 맞는 그룹 총수들이 으레 말하는 ‘위기의식 강조’가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7일부터 나흘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4’ 현장은 한국 대기업 그룹의 위기의식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줬다. 삼성그룹의 ‘돈줄’인 스마트폰의 경우 ZTE 등 중국 업체들의 제품 완성도가 삼성전자나 LG전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곡면 UHD TV는 하이센스·TCL과 같은 중국업체들이 6개월 만에 한국기업들을 쫓아왔다.

 경기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그렇다고 가만있을 순 없다. 위기는 오히려 기회다. 투자를 늘리며, 기업 기강을 다잡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기업들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30대 그룹 기획총괄 사장 간담회’에서 삼성그룹은 올해 약 5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은 2011년 42조원, 2012년 45조원, 지난해 49조 원을 각각 투자했다. 삼성전자 이상훈 사장은 채용 규모에 대해서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국내 경제에서 삼성이 가진 비중이 있기 때문에 일단 지난해 수준으로 계획은 잡아놨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지난해 투자액보다 약 1조 원 많은 15조 원 안팎을 투자하기로 잠정 계획을 세웠다. 현대차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자동차 개발과 중국 4공장 건립 등을 중심으로 지난해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한다는 게 그룹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SK그룹 역시 석유화학 분야와 반도체 위주로 지난해(약 13조 원)보다 3조 원 많은 16조 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다. LG그룹도 올해 16조 원 이상 투자하기로 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4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30대 그룹 기획총괄 사장단 간담회를 연 뒤 기자들과 만나 “올해 (30대 그룹의) 투자·고용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30대 그룹은 155조 원의 신규 투자와 14만 명의 신규 고용 창출의 투자 계획을 산업부에 제출한 바 있다.

 조직 기강 다지기에도 나섰다. 삼성전자는 최근 이례적으로 전체 임직원의 의지를 모으는 결의대회도 열었다. 지난 13일 메모리반도체·시스템LSI 등을 담당하는 DS(부품)부문이 권오현 부회장 주관으로 결의대회를 열었다. 21일에는 TV·생활가전·프린트·의료기기 사업을 담당하는 CE(소비자가전)부문이, 23일에는 휴대전화·카메라·PC·네트워크 사업을 담당하는 IM(모바일)부문이 연이어 결의대회를 열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해 불확실한 대내외 경영 환경 속에서 임직원이 힘을 합쳐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가자는 의지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 10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2014년 상반기 판매촉진대회’를 열고, 판매역량 강화와 판매목표 달성을 결의했다. 이날 판매촉진대회는 전국 지점장, 서비스센터장, 출고센터장 등 약 500여 명이 참석했다. 현대차 임직원들은 올해 경영여건은 어렵지만 제네시스와 쏘나타를 필두로 한 신차 마케팅을 강화하고, 전시장과 서비스 거점을 고급화하는 등 치열한 시장 상황에 적극 대응하기로 결의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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