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찾은 루비오 … 공화당 차기 주자의 대북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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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마르코 루비오 연방 상원의원이 한국을 찾았다. 첫 아시아 방문인 루비오 의원은 “아시아에서 미국이 직면한 도전 과제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서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24일 아산정책연구원 초청강연에서 연설하고 있는 루비오 의원의 모습. [사진 아산정책연구원]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살아생전에 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민주주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외교적 조치를 취할 때 신중하지 않으면 좋은 의도로 북한을 대해도 북한은 이를 악용할 수 있다. 지속적인 퍼주기는 답이 아니다.”

 한국을 방문 중인 마르코 루비오(43) 미 연방 상원의원(공화당·플로리다주)은 24일 “북한의 유화적 제스처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초청강연에서다. 그는 북한 정권을 ‘살인자 정권’ ‘아주 나쁜 정권’이라고 표현했다. 또 “북한은 주민들의 기본적인 자유와 신이 주신 잠재력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주일 일정으로 아시아 순방에 나선 루비오가 마지막 방문국 한국을 찾았다. 24일 윤병세 외교·김관진 국방 장관을 만났다. 이어 토요일인 25일엔 박근혜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예방한다. 상원 외교위 아·태 소위 간사인 그는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 등과도 만나 아시아 정세와 외교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연방 초선 의원에 불과한 루비오의 말에 미국은 물론 아시아 국가들이 귀 기울이는 까닭은 그가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선 그의 아시아에 대한 인식과 관점이 3년 뒤 미 정부가 수립할 대아시아 정책의 기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아시아 3국 방문의 배경을 “동료들에게 아시아에서 직면한 도전 과제에 대해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자고 말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아시아의 직면한 도전’이란 특히 북한의 위협을 염두에 둔 발언이란 해석이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23일 방한해 비무장지대(DMZ)를 찾은 마르코 루비오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의 창문 너머에서 자신의 사진을 찍는 북한 병사를 응시하고 있다. [사진 루비오 의원실]

루비오 의원이 강연에서 DMZ(비무장지대) 방문 일화를 소개하며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내가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단순한 지리적 경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자유와 억압,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기회의 경제와 굶주리는 경제를 나누는 경계였다”고 말했다. 루비오 의원실은 ‘DMZ에서 루비오가 억압적인 북한 정권과 대면하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을 방문한 루비오가 창문 너머의 북한 병사와 마주보고 있는 사진을 소개하기도 했다.

 루비오 의원은 쿠바 이민자의 후예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나 역시 아직 쿠바에서 억압 속에 사는 친척이 있다”며 남북한 이산가족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날 오전 공개서한을 보낸 데 대해서도 “이런 유화 메시지를 보내고 곧 도발이 뒤따르는 사이클은 너무나도 익숙한 행동 패턴”이라며 “핵심은 이를 신뢰할 만한 추가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전 세계도 그런 행동은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 대해서도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루비오는 “1989년은 유럽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기적의 해였지만, 이때 중국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태는 아시아에서 자유 확산이 저지되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 “대만은 중국의 문화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는 인식을 깬 성공적 사례”라며 “앞으로도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동맹국인 대만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루비오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지정을 두고 “중국의 경제·군사력 증대는 중요한 위기이며, 중국과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증대되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루비오 의원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의 외교정책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고 원칙론을 폈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 대해선 “그저 수사로 끝나지 않도록 아시아에 충분한 자원 배정을 할 것”이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젊은 보수의 상징이자 히스패닉 유권자의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그는 최근 또 다른 유력한 공화당 대권 후보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정치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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