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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선거 앞에만 서면 정치인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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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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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체 정당 공천으로 시끄럽다. 오늘 여야 대표가 만나지만 합의는 어려울 것 같다. 1년 전쯤 대통령 선거 때만 해도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데 다른 의견이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선거를 치르며 반대 여론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영호남에선 특정 정당 공천장이 바로 당선증과 같았다. 그러다 보니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들이 자기 하수인을 후보로 내세웠다. 공천 대가로 금품이 오간다는 얘기는 검찰 수사에서도 수없이 확인됐다.

 상향식 공천조차 무력하게 만들었다. 어떤 지역에선 특정인에게 공천을 주려고 여론조사를 조작하다 들통이 났다. 여론조사를 포함해 경선을 거치면 공천 불복을 할 수 없다. 투표권을 주민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쥐고 있는 꼴이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모두 특정 국회의원 수하여서 견제 기능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니 국민만 애가 단다. 국회의원들이 이런 특권을 순순히 내놓을 리 만무하다. 대통령 선거 때라 표가 아쉬워 덜컥 약속했을 뿐이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니 다시 욕심이 생긴 것이다. 선거 앞에만 서면 정치인의 얼굴이 두꺼워지는 일이 어디 이번뿐인가.

 그나마 갈등을 빚는 건 여야의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서울의 구청장 25명 중 민주당이 21명. 정당 공천이 없으면 민주당은 현역 프리미엄을 확실하게 누릴 수 있다. 야권 후보는 현역 구청장으로 자동 단일화되고, 도전자들은 서로 새누리당 후보라고 주장하며 난립할 게 뻔하다. 거꾸로 정당공천을 유지해 민주당과 안철수신당 후보가 표를 쪼개면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꽃놀이패를 새누리당이 왜 마다하겠는가.

 정당공천이 유지되면 야권 후보 단일화로 관심이 옮겨가게 돼 있다. 어차피 광역이야 이러나 저러나 단일화 여부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야당 지지자들은 무조건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명분을 따져서가 아니다. 철저히 정치공학적 계산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안 되면 선거에서 망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정말 꼭 그래야 하는 걸까. 그러고도 신당을 만들 명분이 생길 수 있을까.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양 김씨(김영삼·김대중)가 후보 단일화를 안 한 것은 두고두고 비난을 받았다. 사실 그때는 기본적인 민주주의조차 억눌려 있던 때다. 어떻게든 군인들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는 게 국민적 열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87년 김대중 후보는 민주당과 결별해 평민당을 만들면서 ‘국민의 8할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결국 3당 합당 뒤 유일 야당으로 남았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이제 국민은 정당 개혁을 요구한다. ‘안철수 현상’은 이런 불만의 분출이다. 물론 안철수신당이 그 현상을 담을 그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아봐야 한다. 연대를 하지 않으면 한두 번 선거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10년 이후를 내다보는 수권정당으로 바로 서려면 철저한 개혁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먼저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라는 책에서 영국 자유당이 몰락한 것은 노동계급의 성장에 따른 구조적 운명이라기보다 “변화된 사회적 요구에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고…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어갔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자유당은 노조와 관계가 좋았다. 노동당 전신인 노동자대표위원회와 선거연대를 해 당선 가능성이 큰 지역 50여 개를 내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1906년 의석 3분의 2 이상(400석)을 차지해 10년간 집권한 자유당은 10년 만(1924년)에 10분의 1(40석)로 추락했다.

 사실 선거연대는 기득권의 연장책이다. 개혁 경쟁을 하지 말고 적당히 나눠먹자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일부 민노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그러나 ‘종북(從北)’ 논란이 벌어지자 민주당은 발뺌했다. 국민에게 그 후보를 찍으라 보증을 서고도 모른 체한 것이다. 무책임한 한국식 선거연대다.

 그럴 바엔 차라리 중대선거구제(다당제)로 가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보수건 진보건 정치를 쥐고 흔드는 목소리 큰 소수 극단세력은 별도로 떼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책임도 분명해지고, 대화와 타협도 가능해진다.

 1가구 2자녀 캠페인이 한창이던 시절 한 친척 어른이 셋째를 얻었다. 그분은 이렇게 변명(?)했다. “한 아이는 자기만 알고, 두 아이는 이기고 지는 것만 알고, 세 아이는 돼야 귀를 열고, 대화와 협상·연대를 생각한다.” 정치력이 사라진 우리 정치를 보면 그 말이 새롭다.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