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원 봉급자 6만원 더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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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억800만원을 받는 대기업 부장 최모(47)씨는 다음 달부터 월급봉투가 얇아진다. 세법 개정에 맞춰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세액이 껑충 뛰어오르면서다. 기획재정부는 23일 ‘세법 후속 시행령 개정’을 발표했다. 개정 대상은 소득세법·법인세법·조세특례제한법·상속증여세법·종합부동산세법을 포함해 22개 세법 시행령이다.

 이에 따르면 네 식구의 가장인 최 부장은 매달 9만원씩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연간으로는 108만원이다. 지난해 8월 정부가 내놓은 소득세법 개정안에서 의료비·교육비 같은 지출항목의 비용인정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여파가 올해 본격화하는 것이다. 이미 예고된 일이지만 최 부장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면서 세 부담 증가가 현실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회사원은 기재부가 세액공제 전환을 통해 사실상 증세에 나선 연봉 7000만원 초과자들이다. 각종 지출을 비용으로 인정해 세금이 부과되는 대상(과세표준 소득) 자체를 줄여주는 기존의 소득공제와 달리, 각종 지출에 대해 일률적인 세율만큼만 세금을 깎아주는 세액공제는 연봉이 많을수록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올해 연봉이 오르지 않는 한 다음 달부터 원천징수세액이 늘어나면서 당장 집에 가져가는 소득이 줄어들어서다. 조만간 새로운 연봉계약을 통해 연봉이 오르더라도 인상분이 원천징수세액 증가분만큼 오르지 않으면 지난해보다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원천징수는 회사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 소득규모별로 계산한 세율에 따라 예상되는 소득세액을 미리 징수해 국세청에 납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매달 납부하는 세금이 그대로 연간 소득세액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매년 1월 실시하는 연말정산을 통해 과부족을 털게 된다. 평소 납부액이 과다했으면 2월 급여를 통해 돌려받고, 부족했다면 더 내야 한다. 기재부는 이같이 환급액이나 추가납부액이 지나치지 않도록 원천징수 간이세액표를 발표한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근로자가 연말정산 때 추가 납부하는 일이 없도록 간이세액표보다 더 넉넉하게 세금을 원천징수해 두는 경우가 많다.

 새 간이세액표에 따르면 소득이 늘어날수록 원천징수세액이 커진다. 네 식구 기준으로 연봉 7200만원 근로자의 원천징수세액은 현행 37만원에서 40만원으로 매달 3만원씩, 연간으론 36만원 오른다. 연봉 8400만원 근로자는 51만원에서 58만원으로 매달 6만여원씩, 연간으론 72만원이 상승한다.

 개정 세법에 따라 올해부터 최고세율(38%)이 적용되는 연봉 1억5000만원 근로자의 세 부담 상승폭은 더 커졌다. 연봉 1억8000만원 근로자는 278만원에서 297만원으로 오르면서 매달 19만원씩, 연간으론 228만원까지 원천징수세액이 늘어난다. 연봉 2억4000만원 근로자는 444만원에서 483만원으로 연간 418만원까지 세 부담이 늘어난다.

 연봉 7000만원을 넘어서는 근로자는 납부세액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내년 연말정산 환급액 역시 대체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비용으로 인정받는 소득항목이 대폭 줄어들고 과세대상 소득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다. 간이세액표에 나와 있는 원천징수세액은 평균적인 개념이어서 부양가족 공제와 같은 기본공제 적용 대상 가족이 없는 1인 가구의 경우에는 환급은커녕 연말정산 때 추가로 더 토해낼 수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1인 가구는 기본공제나 교육비, 신용카드 사용액 공제처럼 공제받을 수 있는 항목이 더 적을 수밖에 없어 결정세액이 간이세액표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유리알 지갑’으로 불리는 근로소득자들의 세 부담이 높아지면서 정부의 세수 증가 효과는 1조2200억원에 달한다.

연봉 6000만원 이하는 세 부담 같거나 줄어

세액공제 전환과 근로소득공제율 조정 효과로 8700억원가량의 세수가 늘어나는 데다, 최고세율 하향 조정(3억원→1억5000만원)으로 3500억원가량의 세수가 추가로 확보돼서다.

늘어나는 최고세율 적용 대상자는 12만4000여 명에 이른다. 이에 대해 김낙회 세제실장은 “월평균 500만원대를 받는 연봉 6000만원대 근로소득자까지는 세액공제 전환 후에도 세 부담에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매달 1만원가량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는 연봉 3450만원 미만은 세 부담을 줄이고 3450만~5500만원 근로자에 대한 세 부담은 기존 수준으로 유지한 결과다. 이번 간이세액표는 다음 달 21일 공표 이후 적용돼 1일이나 15일, 20일이 급여일인 생활자라면 3월 급여부터 세액이 바뀐다. 1월이나 2월에 낸 세금과의 차액은 내년 연말정산 때 계산된다.

 한편 기재부는 2월 임시국회에서 종교인 과세 통과를 다시 한번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연말 세법개정안 국회 통과 때 최종 조율에 실패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과세 대상이 최대 17만 명에 달하는 종교인 과세는 과세 명목이나 범위를 둘러싸고 종교계와 정부 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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