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가 허문 마산선사 유적지|보존 논의와 그 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기계공업단지가 들어설 마산시 외동 성산부락 뒷동산의 패총에서 발견된 삼한시대 야철지 및 성채유적은 예정발굴을 매듭짓고 「불도저」가 유적지의 일부를 파괴한뒤 늦게 보존문제가 논의되고 있어 그 귀추가 한층 주목되고 있다.
9일 문화공보부는 이규현 차관을 비롯해 서울대 김원용박사·김정기 문화재연구실장 등을 급파, 현상을 재확인한 뒤 우선 유적일대를 다치지 않도록 공사범위를 제한하는 한편 계속 발굴을 확대하고 나아가 유적공원으로서 현상 보존하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보존 조처하는데는 공업단지조성공사가 8월을 시한으로 하여 정부에 의해 급「피치」를 올리고 있는 만큼 관개부처와의 협의아래 결정짓게 된다.
현재 들판의 매축작업이 한창인 창원기계공업단지는 전체 4백만평중 1차분 1백20만평의 단지조성이 진행되고 있다. 유적이 있는 언덕은 땅을 돋우기 위한 토취장으로 지목된 수개 구릉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언덕은 경주 황남동 98호분에 비견될만한 크기의 독립봉이며 정상부의 축석한 성안의 평지면적이 1천여평 정도. 성들 바로 밑 비탈에 조개껍질의 퇴적층이 덮였고 그 속에서 갖가지 유물과 야철의 자취 등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마산 도심지에서 10㎞ 떨어진 이 유적은 맨 먼저 마산지역에 정착한 선주민의 자취. 당시의 부족집단이 모여 산 조건들은 인근 김해패총(사적 2호)과 매우 유사점을 갖추고 있어 토기·석기·철기·골각품·주화 등이 다 비슷한데, 특히 도가니와 등잔으로 보이는 이형토기와 석성· 야철지 등은 보다 뛰어나고 희귀한 자료다.
지난 8일까지 27일간의 발굴조사는 외동 성산의 전체 유적으로 볼 때 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앞으로 더 조사함에 따라 어떤 뜻밖의 유물·유적이 드러날지 모르는 형편이다.
이곳 패총은 이미 지표조사로 확인돼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재관리국은 작년 10월 단지조성공사 착수에 앞서 사전발굴의 필요성을 관계당국에 통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단지조성 실무자인 산업기지 공단 측에서는 그런 의뢰를 받은바 없으며 현지 주민과의 승강이만 없었더라면 11월에 벌써 밀어내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근년 활발해진 개발사업에 따르는 문화재보존의 커다란 허점과 위기를 암시한다.
8일 낮 이곳 패총유적의 발굴작업이 일단 종료되자 단지조성 시공의 삼부토건은 철야해서 「불도저」를 투입, 구릉 정상의 성벽일부를 밀어냈다. 다행히 야철지만은 떠 옮기기로 돼있어 다치지 않았을 뿐인데, 긴급 조사반의 파견으로 그 이상의 유적파괴는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문화재관리국은 이 유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자 뒤늦게 보존책을 강구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관리국자체로는 보존책을 강구하는데 역부족이라면 문화재위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관리국은 이 문제를 위원회에 제기한 바도 없으며, 특히 근년에 위원회의 기능을 아주 약화해놓은 까닭에 그러한 자문조차 불필요하게 여겼을지 모른다.
어쨌든 이번 마산의 기계공업단지 선사유적은 공교롭고 역사적인 계기가 됐다. 현장을 돌아본 한 관계관은 『현대의 거대한 기계공업시설과 2천년전 중공업의 자취』라 비유하면서 현상보존의 의의를 지적했다. 또 김원용박사는 패총으로선 희귀한 유적임을 들어 한갓 토량 채취를 위해 허물기보다는 녹지공원으로 남기는 게 몇 십배 유익한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 보존문제를 곧 귀결짓겠지만, 그 여부에 따라 개발사업과 문화재보존에 새로운 교훈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종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