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도의 일자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리나라에 인류학이란 학문이 소개된 것은 오래지 않다.
인류학을 전공한 사람의 수도 적다. 그러나 더욱 아쉬운 것은 인류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해서 인류학도를 사회적으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의 한 전문분야인 인류학은 사람의 행동과 심리적 특성, 사회조직, 경제행위, 전통적인 관습과 법률, 정치형태 등 인간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또 인류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에도 밝은 지역전문가로서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전문화 되어갈수록 다양한 직분에 맞는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젊은 인류학도들에게 가장 적합한 일자리는 무엇인가? 인류학도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경험한 예를 들어보면 첫째는 대학과 각종 연구기관에서 가르치며 연구에 종사하는 학자로서의 진로와 둘째는 인류학의 이론과 방법을 실제의 문제해결에 활용하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정부의 사회·문화정책을 기획하고 시행하는 일, 농업과 수산업·보건의료분야에서 전통적인 관행과 기술을 혁신하는 일, 지역 전문가로서의 해외파견 업무, 생산공장과 기업체 내부의 인간관계와 작업능률, 생산성과 관련된 여러가지요인들을 파악해서 운영의 합리적인 관리를 도모하는 일들이 포함된다.
각종의 판매업체와 무역회사에서 국내와 외국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소비성향에 토대를 둔 시장조사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도 인류학도의 적합한 일자리가 된다. 더구나 요즘처럼 모든 기업이 자기 나라에서만 세력을 펴는데 그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그 지역에 관한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해서 실지조사와 조정의 일을 맡기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러한 일들을 맡아서 능히 해낼 수 있는 한사람의 전문인류학도를 배출하기 위한 대학의 사명도 또한 크다. 우선 이론의 전문가와 지역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갖춘 교수진이 마련되어야하고 인접 학문과의 협동으로 학생들에게 충분한 기초지식과 전문기술을 습득시켜야 한다. 인류학에서는 현지조사가 필수조건처럼 되어 있다. 자기 전문지역의 현지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사람들의 언어를 익혀야하고 조사에 필요한 자금과 현지주민들의 협조는 물론 국제간의 협력도 필요하다.
그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인류학도를 양성하기 위해서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대학과 정부기관, 학술재단, 기업체들이 협력하여 인류학도의 훈련과정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그리고 훈련을 마친 다음에는 응분의 일자리를 주어 전문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도록 주선해 준다. 수년 전에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못 구해서 방황할 때에도 인류학도들은 거의 전부가 현지조사를 마치고 나면 학위논문을 쓰기도 전에 전문직장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인류학의 광범한 산학협동의 전제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상복(서울대 문리대 교수·인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