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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취재 외국에선] "공무원 취재제한 옛 東獨서나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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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창동(李滄東)문화관광부장관이 지난 14일 밝힌 '홍보업무 운영방안'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언론취재에 응한 공무원들이 그 내용을 상부에 즉시 보고하고 취재 실명제를 강요하는 내용은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소지마저 있다.

李장관은 이 방안이 '정부와 언론간의 건강한 긴장관계'가 목적이라고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정보차단 및 언론 길들이기가 본뜻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문화부가 밝힌 홍보업무 운영방안 중 논란이 된 대목을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 짚어본다.

◆취재 통보제=李장관의 보도지침에 따르면 문화관광부 직원은 언론사의 취재에 응한 경우에는 그 내용을 정한 양식에 따라 즉시 공보관에게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사회주의권 국가를 제외하고 취재원 보고를 의무화한 국가는 없다.

미국의 백악관.국무부.국방부의 공무원이 기자를 만날 경우 대변인실의 보고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없는 것은 물론 만난 뒤에도 접촉 내용을 보고하지는 않는다.

국무부의 캔 베일리스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국무부 당국자가 자신의 방에서 기자를 만났다 해도 그 사실을 대변인실이나 간부에 보고할 의무나 규정이 없다"며 "만일 이를 강제로 했다가는 '언론자유를 제약해서는 안된다'는 수정헌법에 당장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한 언론인은 "공무원이 기자를 만나는 것을 제약하거나 상부 보고를 의무화하는 행위는 동독 정권에서나 가능하던 일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취재원 실명제=문화부는 "공무원들은 언론사의 취재에 응할 때 인용의 경우 관계자의 실명을 밝히고 이를 보도에 명시해줄 것을 요구하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취재원의 실명.익명 여부는 정부가 가타부타할 사안이 아니라 보도내용에 따라 기자와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같은 미 주요 신문사는 물론 AP.AFP 같은 국제적 통신기사에도 "익명을 요구하는 한 소식통"이나 "국방부의 한 소스"라는 익명의 인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무부 출입기자단의 간사를 겸하고 있는 AFP의 매튜 리 기자는 "익명으로 기사를 써야 할 경우가 반드시 있다. 정부가 익명 보도를 금지시킬 권한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또 독일의 경우 대부분의 정부 관련 보도는 익명으로 하는 것이 관례다. 심지어 국방부 대변인이 브리핑할 경우에도 독일신문은 실명 대신 '국방부의 한 대변인에 따르면'이라는 식으로 보도한다. 영국 언론도 익명을 자주 쓴다.

◆취재 공간 제한=문화부는 "공공업무 공간의 보호를 위해 사무실 방문 취재는 원칙적으로 제한한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은 일부 제한받고 있다. 백악관 출입기자는 브리핑룸이 있는 건물 1, 2층과 브리핑룸과 바로 인접한 대변인실 복도까지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취재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테러 등을 의식한 보안조치다. 백악관 출입기자가 안보보좌관이나 비서실장을 만나야 할 경우 사전 연락을 통해 취재원을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다.

국무부도 기자는 대변인실.브리핑룸.민원실 등이 있는 2층까지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3층부터는 에스코트를 받아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백악관.국무부.국방부 그 어디에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관료들이 기자를 만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한국과 비슷하게 기자실을 운영하는 일본의 경우도 취재공간 제한은 없다. 기자가 사전 약속없이 불쑥 사무실에 들어가는 일은 없지만 기밀사안이 아닌 한 최대한 취재에 협조한다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워싱턴.베를린.런던.도쿄=이효준.유재식.오병상.김현기 특파원

<사진 설명 전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기자 접촉을 제한하거나 상부 보고를 의무화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백악관에서 이라크 문제를 설명하던 도중 출입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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