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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쳐, 꼼짝 못하는 인도네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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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 9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부 시나붕 화산 인근의 토마토 농장을 화산재가 뒤덮었다. 시나붕 화산이 폭발하면서 농작물 피해가 컸고 대규모 이재민도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화산 경보 발령 뒤 약 2만 가구가 대피했다. 잇따른 자연 재해는 위기에 빠진 인도네시아 경제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악재는 3형제’. 요즘 인도네시아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외국인 투자금의 엑소더스를 유발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축소,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 여기다 최악의 자연재해까지 인도네시아를 덮쳤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달러당 1만2000선이 뚫리자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속수무책 추락하고 있다. 통화가치 폭락을 막을 카드는 두 가지다. ‘월급(경상수지 흑자)’이 많거나 ‘저금(외환보유액)’이 두둑해야 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둘 다 낙제점이다. 경상수지는 2011년 12월 이후 내리 적자다. 외환보유액은 909억 달러로 한 해 경상수지 적자와 단기외채를 합한 액수와 맞먹는다. 외환위기가 시작되면 1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다.

 인도네시아도 1997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제통화기금(IMF) 통제 체제’를 겪었다. 1000억 달러 외채를 갚지 못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러나 두 나라는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갔다. 한국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제조업 체질을 바꿨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중국이란 이웃 덕을 봤다. 중국이 고속성장을 하면서 원자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자 2009년부터는 국제 원자재 시세가 폭등했다. 석탄·석유·가스 등 에너지 자원과 고무·원목 등 원자재가 풍부한 인도네시아엔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덩달아 수출이 급증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따르면 2006~2011년 인도네시아 수출액은 840억 달러에서 2040억 달러로 2.4배가 됐다.

 인도네시아의 천연자원 개발에 눈독 들인 해외 투자금도 밀물처럼 유입됐다. 그러나 성장에 도취된 정부는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소홀했다. 2억5000만 명에 달한 인구가 소비를 시작하자 수입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상수지 적자가 고질병이 된 건 이 무렵부터다. 싼 원유를 팔아 비싼 휘발유를 사와야 하는 취약한 산업구조도 적자를 키웠다. 과열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고속성장에 제동을 걸자 2012년 국제 원자재 가격이 꺾이기 시작했다. 2011년 4월 t당 128.5달러를 찍었던 국제 석탄 시세는 2013년 6월 70달러로 45.5%나 폭락했다. 수출의 50%를 원자재에 의존해온 인도네시아 경제가 뿌리째 흔들린 건 당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 Fed가 지난해 12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착수하자 외국인 투자금마저 빠져나갔다.

 그러나 정부는 헛발질을 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지난 12일 광물 수출 금지 법안을 시행했다. 가공하지 않은 광물의 수출을 막아 자국 제련업을 살려보자는 취지였지만 역풍이 거셌다. 수출길이 막히자 소규모 광산업체가 줄줄이 도산했고 직장을 잃은 광부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자원 민족주의’를 우려한 해외 투자금의 탈출도 가속화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 아구스 마르토와르도조 총재조차 “올해 경상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아래로 관리하는 게 목표”라면서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적자는 3%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다 자연재해까지 발목을 잡았다. 연초부터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했다. 밤방 브로조네고로 인도네시아 재무차관은 “폭우 피해로 올 1월 물가가 1%포인트 더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북부 지역은 시나붕 화산 폭발로 농작물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올해 총선(4월)과 대선(7월)을 한꺼번에 치른다. 집권 여당이 부패 스캔들로 흔들리고 있고 야당의 공세가 강해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외환위기 조짐이 보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당장 97년과 같은 국가 부도 위기를 맞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은 많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연구원은 “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달러가 빠져나갈 때 대응하는 요령을 익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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