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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단위 계획표 … 버리는 시간 확 줄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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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군은 실전 감각을 기르기 위해 시간을 재며 고3 모의고사를 풀어본다. 그는 “똑같은 문제라도 실제 시험지로 푸는 게 집중이 더 잘 된다”고 말했다.

이번 전교 1등은 여느 전교 1등과는 다르다. 석차 그래프에서 줄곧 밋밋한 일직선(1등)을 그린 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오른쪽 위로 치솟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이나믹한 그래픽의 주인공은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 1학년 박정현(16)군이다. 중학교 시절 주춤했던 성적은 고교 입학 후 꾸준히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만큼 박군의 책상도 특별할까. 막상 가보니 평범했다. 아니, 지나치게 평범해서 오히려 특별하기도 했다.

국어교육과 교수 아버지와 공립학교 교사 어머니를 둔 덕분에 박군은 어릴 때부터 이사를 많이 했다. 초 1~3학년엔 충북 청주 진흥초, 4학년은 경기 분당 하탑초, 5~6학년은 대전 한밭초에 다녔다. 중학생 때 서울로 올라와 대치동 대청중을 거쳐 경기고에 재학 중이다. 엄마 권금희(45)씨는 “잦은 전학 탓에 교우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친구를 잘 사귀는 등 적응이 빨랐다”며 “초등 시절 증조모·조부모와 함께 4대가 살았던 게 인간관계에 도움을 줬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군은 첫돌 이후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때한 살 터울 형과 사진을 찍는다. 박군 부모가 형제간 우애를 키워주려고 시작한 거다. 엄마 권씨는 “아빠가 가족애와 형제애를 강조한다”며 “남자애들이라 살갑진 않지만 한번도 언성 높여 싸우는 걸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이런 심리적 안정감이 학교생활에 도움이 됐다는 얘기다.

 박군은 초등 시절 반에서 상위 1, 2등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치동, 그중에서도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대청중 적응은 만만치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웬걸. 중학교 반 배치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 사실 대전 한밭초는 학부모 가운데 대덕연구단지 연구원과 교수 등이 많아 ‘대전의 대치동’으로 불릴 정도로 학구열이 높은 곳이다. 그 덕에 대치동 입성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1학년 때는 반에서 5등을 유지했다. 그러다 2학년 2학기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박군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생각에 게임에만 몰두했다”며 “틈만 나면 게임을 했다”고 말했다. 전교 157등까지 밀려났다. 성적은 떨어졌지만 학교에선 계속 우등생 친구들과 어울리며 모범생 스타일로 지냈다. 그러다 집에 오면 ‘게임 보이’로 변신했다. 박군은 “게임 시작 1년 여만에 스타크래프트 2 래더(상위 리그) 랭킹이 한국·대만 합산 700위까지 갔다”고 말했다. 래더 랭킹은 일정 시간 승률을 쌓아야 진입할 수 있는 이른바 고수가 모인 리그인데, 여기서 양국 합산 700위는 준프로급(프로선수들은 500위 안에 든다)을 의미한다. 본인은 프로게이머의 꿈에 한발 다가선다고 믿는 동안 고교 입시철이 다가왔다. 친구와 함께 영재학교(서울영재고 등) 입시를 치렀는데 친구 둘만 합격했다. 혼자 불합격이었다. 박군은 “빈 껍데기가 된 기분이었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일주일쯤 힘들어하다 친구들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자고 결심했다. 그날로 단칼에 게임을 접었다. 박군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좋은 성적을 낸 것도, 또 게임을 단번에 접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새 목표가 생기니 게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틈만 나면 게임하던 습관을 틈만 나면 공부하는 걸로 바꿨다.

 그 결과 고1 1학기는 수학(2등급)을 제외하고 모두 1등급, 2학기는 전 과목 1등급을 받았다. 모의고사는 6·9월 모두 전국 상위 0.1%에 들었다. 덕분에 이번 방학식에서 성적우수장학금과 성적진보장학금 2가지를 동시에 받았다.

 박군은 매우 계획적이고 꼼꼼한 성격이다. 책상만 봐도 그런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방엔 침대와 책상·책꽂이가 전부인데, 책상 위는 웬만한 여학생보다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스마트폰이나 MP3는 아예 없다. 산만해지기 때문에 스스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거다. 책상은 본인이 직접 치운다고 한다.

 공부나 독서할 때도 계획적인 성격이 묻어난다. 독서퀴즈대회, 논술대회 등 독서 관련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상을 휩쓸지만 의외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책 읽는 걸 싫어해서 책 읽을 생각으로 독서 관련 대회에 참가할 정도다. 박군은 “독서 대회라는 목표가 있으면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해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며 “고교 입학 후 1년간 20권을 읽었다”고 말했다. 대회 때는 독서를 1순위에 두고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었다. 국어공부와 독서가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이렇게 하면서도 불안하지는 않았단다. 사실 학교 독서 대회는 대부분 교과 연계이거나 청소년 권장도서라 모의고사 지문에도 자주 등장한다. 엄마 권씨는 “평소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엔 아빠가 매일 잠자리 들기 전 책을 읽어줬다”며 “아빠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빠가 구연동화하듯 재밌게 읽어주고 나면 엄마는 줄거리를 물었다. 한마디 답하면 ‘그 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어 질문했다. 박군은 “책 읽기 싫어하는데 무조건 읽으라고 하면 더 싫어하게 된다”며 “독서를 강요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스스로 판단해서 찾아 읽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군만의 독특한 공부법이 있을까. 우선 그는 모든 과목 선생님 얘기를 전부 교과서에 받아 쓴다. 또 집에 오면 노트에 그날 배운 내용을 과목별로 이해하기 쉬운 말투로 바꿔서 한번 더 적는다.

 과목별로는 조금씩 다르다. 수학은 실수기록장을 만든다. 자주 하는 실수 패턴을 분석하려고 시작했다. 박군은 “이번엔 맞았지만 틀릴 수 있었을 법한 문제도 적어 실수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영어나 암기 과목은 반드시 필사하면서 외운다. 또 나만의 문제집을 만든다. 교과서를 복사해 단원별로 중요 단어를 수정테이프로 지우고 다시 복사해 빈칸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면 저절로 교과서가 외워진다. 지치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반드시 한다. 박군은 “이 방법이 없었다면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점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실수노트, 학습계획표, 꼼꼼한 수업 필기, 나만의 문제집 만들기 등이 모두 중요하지만 그날 배운 내용을 내 방식으로 노트에 적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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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 모의고사 시험지 풀이는 박군이 실전 감각을 기르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다. 엄마가 모의고사 시험지를 구해다주면 타이머로 시간 재며 실제 시험처럼 풀어본다. 박군은 “고3 모의고사가 끝나면 인터넷에서도 손쉽게 문제지를 구할 수 있지만 실제 시험지로 푸는 게 집중이 더 잘된다”며 “꼭 모의고사가 아니더라도 기출문제집을 시간 재며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시작한 30분 단위 학습계획표도 눈에 띈다. 그전엔 그날 무슨 공부를 얼마나 할지만 계획을 세웠는데 자투리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30분 단위로 쪼갰다고 한다. 이후 허투루 버리는 시간이 확 줄었다. 박군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내게 맞는 공부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김소엽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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