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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갑오년의 동북아 정세삼국지

중앙일보

입력

갑오년(2014)의 명암

갑오년은 청마(靑馬)의 해로 말처럼 앞으로 내 달리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120년 전의 갑오년 청일전쟁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청일전쟁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의 예언처럼 동북아의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를 가져 온 기존의 강대국 중국(淸)과 신흥 강대국 일본 간의 전쟁이었다. 120년 후 지금 청일전쟁 이후의 동아시아의 질서의 변화가 예상되는 갑오년이 다시 돌아왔다.

해양굴기를 중심으로 부상하는 중국과 미국을 배후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일본의 대립이 센카쿠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을 중심으로 심화되고 있다. 특히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참배, 집단적자위권(collective self-defence)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변경추진 등 아베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성급한 우경화 행보는 이 지역의 불안을 더해 주고 있다. 금년의 동북아 정세는 “아베의 폭주(暴走)”라고 불리는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와 깊은 관계가 있다.

북한의 장성택 숙청과 함께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군(軍)에 크게 의존되고 있어 한반도의 불안도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 지역은 금년이 가장 불안한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다. 120년 전의 청일전쟁 외에도 110년 전 러일전쟁, 100년 전에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한중(韓中)과의 백년 전쟁”

2012년 12월 일본의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당을 패배시킨 자민당은 아베 총재를 총리로 지명하고 여세를 몰아 2013년 7월 참의원 선거에도 압승 강한 일본(Strong Japan)의 새로운 판을 짜기 시작하였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에즈라 보겔(1930- ) 교수의 “일본 최고(Japan as No.1)"라는 책이 1979년 발간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GDP 세계 2위의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았다. 이 책은 급부상하는 일본에 대한 경고음(warning bell)으로 작용해서인지 미국은 일본의 부상을 견제하면서 일본 경제는 침체되고 정치는 무력해져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 사회는 건강성과 여유성을 상실하였고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이후의 세계금융위기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발생한 후쿠시마(福島) 원전의 방사능 유출사건은 일본으로서는 내우외환의 좌절이었다. 일본인들에게 정치 사회적 폐색감이 늘어나고 과거 영광의 대일본 제국으로 회귀코자하는 바람이 날로 커지고 있었다.

일본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는 반면에 떠오르는 중국은 2010년 이래 GDP로는 일본을 능가하였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 국가의 반열에 올라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반면에 일본은 지는 해로 무시되고 있었다.

또한 한국도 조기 글로벌 화(化)로 성장의 속도가 빨라 한일 두 나라의 GDP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삼성전자의 성장이 “전자 일본”의 프라이드를 심어 준 소니 와 도시바 같은 전자업계를 제패하는 성과를 이루었고 자동차 산업도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 자동차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의 산업은 과거 일본 기업의 하청이나 받는 수직적 관계에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평적 관계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과거 후발 신흥국으로 대우했던 중국과 한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를 거두고 자국 중심의 외교를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일본의 월간지 분게이 슌주(文藝春秋)는 2013년 10월호에서는 “한중(韓中)과 백년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일본에 대한 한중의 압박을 위협으로 의식하기 시작하였다.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와 미일관계

2006년도 이미 총리를 경험한 바 있는 아베 총리는 일본을 스스로 비하하는 자학사관(自虐史觀)에서 일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긍사관(自矜史觀)으로 바꾸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주장한 일본 정체성의 염원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우선 침체된 일본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1) 금융완화 2)재정확대 3)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을 제시하는 “아베노믹스”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과거 민주당 정권의 아시아 중심외교에서 미일동맹 강화에 외교력을 집중하였다.

“Japan is BACK"이라고 강한 일본의 복귀를 선언한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의 개정이 필생의 과업(life work)이라면서 지난 12월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를 감행하고 지난해의 식년천궁(式年遷宮)행사에 참석한 바 있는 일본 신도(神道)의 총본산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 연두 기자회견을 가지는 등 강한 일본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지난 해 예산 통과가 거부되어 일시 샷다운(shutdown)된 바 있는 미국은 예산 자동삭감(sequester)과 중동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위협에 놓여 있는 동북아 안전보장을 일본에게 대폭 위임할 태세이다. 일본은 차제에 미국의 안보의 짐을 받아들이면서 강한 일본의 복귀 명분을 삼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아베 총리의 너무 성급한 우경화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아베 총리가 과거 민주당 정권과는 달리 오키나와의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의 헤노코(?野古) 이전에 적극 지원하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제에 협력하면서 미국이 중심이 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친미 성향을 이어 가고 있지만 지난해 말 야스쿠니 신사의 기습 참배에 “실망스럽다(disappointed)”고 반발하였다.

아베 총리의 신사참배를 “부전(不戰)의 서약“이라고 미국에서 ”야스쿠니 외교전“ 전개하던 야치 쇼타로 (谷內正太郞) 일본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초대 국장에게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주문한 것이라든지 상.하원에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 준수법안“에 오바마 대통령이 신속 서명한 것 등이 아베 총리의 지나친 우경화 행보로 아시아 전략에 차질을 맞게 된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작년 캘리포니아 서니랜즈에서의 정상회담에서 신형대국관계를 논의한 중국과 동북아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별도의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아베노믹스로 국내의 인기가 높은 아베 총리에게 직 간접으로 주변국과의 갈등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센카쿠열도(釣魚島)를 둘러 싼 “용(龍)의 재등장”

아베 총리가 미국을 믿고 우경화 행보를 본격화하는 데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나라가 중국이다. 지난 30년 간 개혁 개방에 성공한 중국은 해양굴기를 통해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려고 하고 있다. 서방 학자들은 중국의 해군력 성장을 명(明)의 정화(鄭和)이후 “용(龍)의 재등장(Dragon swims again.)” 으로 경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이 동중국상공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설정을 하여 이 지역 정세는 더욱 긴장되고 있다.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미국은 중일갈등이 전쟁으로 에스컬레이트 되지 않도록 셔틀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서 중국이 도발하지 않도록 신중한 행동을 요구하는 한편 중국에 대해서는 일본의 동맹국임을 강조하고 중국의 도발에는 미국이 자동개입 됨을 상기시키고 있다.

중국은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에 대해 과거와 달리 일본제품 불매 와 거리시위 대신에 외교력을 동원한 국제 여론전을 펴고 있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미국과 러시아 등 2차 대전의 전승국과 유대를 강화 전후 질서에 일본을 계속 묶어 두려는 중국의 외교력에 자신 감을 얻어 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창조 외교”를 통한 “동북아 패러독스” 해결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에 독도 방문 일본천황 관련 발언 등으로 한일관계는 급랭되었다.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 속에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예상과는 달리 중국 중시로 보이는 외교를 이어갔다. 당시 북한의 3차 핵실험, 미사일 발사와 함께 김정은의 전쟁 발언 등 불안정한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아베 총리가 침략의 정의 발언이며 고노 담화(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 무라야마 담화(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 계승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아 박대통령은 방일을 계속 미루게 되어 한일 양국은 취임한지 일 년이 지나도록 정상회담이 이루어 지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불화는 미국의 동맹체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북한의 정변에 따른 한반도의 불안으로 한일관계의 회복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미국은 일본이 지역 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집단적 자위권행사가 필요로 한다고 해도 과거 역사의 전과를 인식하고 주변국의 우려 해소를 위하여 정치 지도자의 언행에 신중을 기하고 설득을 동반한 “스마트 우경화”를 바라고 있다.

한국은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계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협력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최근 일본 경제 3단체가 아베 총리에게 한일 관계 개선의 주문을 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야스쿠니 참배이후 아베 총리도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반대 등 국내외로 고립에 빠져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자위권 행사에 대해서도 신중모드로 바뀌고 있다. 또한 후텐마 미군기지의 헤노코 이전에 대해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오키나와현 지사의 동의는 받았지만 헤노코를 실제 관활하는 나고(名護)시 시장선거에서 이전을 반대하는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현시장이 재선되어 입장이 복잡해 졌다.

일본 정부는 나고시 시장 재선과 관계없다고 하지만 미군기지의 헤노코 이전이 다시 미궁에 빠질 우려가 제기되어 미일 외교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아베 정권이 총력을 기울인 이번 선거에서 패배함으로 야스쿠니 참배 이후 인기가 예전 같지 못함을 나타낸 것으로 아베 총리의 다음 행보에 타격을 입게 되었다.

미군 기지의 헤노코 이전을 미국에 대한 선물로 생각하고 본격적인 우경화 행보를 이어가려 했던 아베 총리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금년 2월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 반 아베 세력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지지를 받고 있는 탈 원전 연대인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후보가 승리하고, 4월 소비세 8% 증세에 따른 국민들의 지지가 떨어질 경우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는 물론 전반적인 집권의 동력마저 크게 잃을지 모른다.

한국은 당분간 정상회담은 어렵더라도 이러한 일본 내의 새로운 분위기를 활용 여타 분야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노력을 집중하여야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위협에 놓여 있는 한국은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미국의 공동 동맹국으로서 안보협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금년은 유달리 분쟁의 기운이 있는 해이다. 동북아가 세계경제와 국제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현재 갈등 속에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중간자 입장에서 “창조 외교”를 통하여 동북아의 국가 간의 신뢰를 구축하여 “동북아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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