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사이판 도(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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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이판」섬은 전쟁광상시를 자아내는 마의 섬이다. 남들은 아름다운 자연만을 보고 이렇듯 훌륭한 자연미가 또 있을까하고 절찬하지만, 저 독일의 괴기주의 화가인「뵈를린」의 명화『죽음의 섬』과도 같은 소름끼치는「이미지」를 자아낸다. 「자결의 절벽」밑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비극을 재생시키고 격전지에서는 30년 전에 희생된 병사들의 백골들이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처참하고도 억울한 모습을 보았다.

<숲 속에도 병사의 백골>
이「자결의 절벽」은 고스란히「뵈를린」의『죽음의 섬』에 그려진「그로테스크」한 바위와도 같이 느껴졌다. 이「자결의 절벽」은 어쩌면 피 비린 전쟁과 처참한 죽음을 상징하는 산 그림이 아닌가.
나는 그전 여행 때 숙명적인 전쟁의 땅「카이버」영에서 평화를 위한 기록을 올렸듯이 이「사이판」섬의 결전 지에서도 다시는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뜨거운 기도를 올렸다.
밤에 자리에 누웠으나 잠은 안오고 숲속에서 본 뼈다귀들이 머릿속에 그대로 떠오른다. 더구나 모자의 뼈라고 생각되는 굵은 뼈와 가는 뼈가 흩어져 있던 것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 진다. 그리고 뜨거운 햇빛을 받아 산 사람처럼 따뜻하던 그 뼈들의 체온을 다시 느끼게 된다. 바람과 비에 표백된 하얀 뼈는「미이라」보다 얼마나 깨끗한가.
저 숲 속의 뼈들은「스큘」을 자주 맞고 대낮엔 뜨거운 햇빛을 받겠지만, 밤에는 달빛과 찬란한 별을 볼 수 있도록 파묻히지 않는 것이 그 해골의 주인공으로선 나을 것이 아닌가.
아까 저녁에 내가 모아놓고 기도를 드려준 그 뼈다귀들에는 지금 찬란한 별빛이 비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의 뼈와 함께 굴러다니는 뼈도 있겠지만, 죽음의 세계에선 모두가 벗일수도 있지 않은가. 제2차대전이 끝난 훨씬 뒤에 유골채집 선들이 다니면서 유골을 모아 가는 한편, 일본은 이 섬에다 관세음보살상을 세우고, 미국은 십자가를 세웠는데 모두가 억울하게 죽어간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적국 병사의 초 종교적으로 명복까지를 비는 그런 드높은 인류애를 베풀지 못하는 것이 어딘가 아쉬웠다.
이「사이판」섬은 싸움의「에피소드」를 위한 보고다. 일본 해군에서는 이 섬을 빼앗겼을 때 내각에『우리들은 지금 중대한 위기에 부닥쳤다』고 경고했었는데, 이 통에 동조내각이 총사직함은 물론 패전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은 이젠 한낱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 섬을 손아귀에 넣은 미군은 곧 거대한 비행장을 여러 곳에 건설했다.
1944년11월24일 일본 본토폭격 제1호인 B-29기가 뜬것이 바로 이「사이판」섬이었다.「오끼나와」기지를 얻기 전까지는 일본폭격의 전초기지로서 여기서 B-29기가 무려 9천8백94회나 폭격하기 위해 출동했으며 비행기를 1백82대나 잃었는데 일본의 군사·산업시설에 떨어뜨린 폭탄이 4만8천5백32t이나 된다고 한다. 「사이판」섬은 이런 큰 구실을 했는데 제아무리 용감하던 일본도 기가 콱 죽고 말았으며, 일본본토의 상륙 작전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유리한 전과를 올렸었다.

<일본 본토 강타한 b-29>
게다가 1945년7월26일 특명을 띠고 일본의 11개 주요도시 상공에서 6만장 가량의 항복권고문「비라」를 뿌린 것도 이「사이판」섬 기지를 떠난 B-29편대였으며 전쟁이 끝난 뒤 미군포로를 위한 의료품·식품·의류 따위를 공중 투하하러 간 것도 이 기지에서 떠난 B-29였다니 이「사이판」섬이 얼마나 큰 구실을 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같이「사이판」비행장은 요새화 했던 만큼 비행장 둘레만 하더라도 대피호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그 때의 전쟁분위기를 연상케 해주었다.
이 섬에서도 일본군이 용감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현재의 일본사람이 볼 때엔 어떻게 비난할는지 모르나 나대로의 평을 하고 싶다. 일본이 높은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은 용기 때문이겠지만, 제2차 대전 때엔 어째서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렇다 할 용기를 나타내지 못하면서도 악한 행위인 전쟁 따위에는 귀신도 곡할 만큼 놀라운 용맹성을 나타냈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선에는 용감하지 못하고 악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용감했던 그 때의 일본이야말로 인류학상의 기형아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군국주의가 휩쓸던 그 때는 독일의 「나치」가 그렇듯이 유령 적 악성횡행시대로서 인간의 이성이 감히 손을 대지 못할 만큼 악마적인 힘에 사로잡힌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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