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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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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화인류학을 보면 포틀래치의(potlatch)라는 의식이 있다는 아메리카 북서구 해안의 인디언들이 즐기는 행사이다. 추장이나 어느 부족이 며칠동안, 제례를 올리며 큰 잔치를 베푼다. 이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많은 음식물이나 선물들을 지참해야 한다. 때로는 모포나 모피를 갖고 오는 경우도 있다.
포틀래치는 자기의 소유물이나 고가한 물건들을 온통 소비해 버림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는 양식이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선물이나 뇌물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를 이 포틀래치에서 찾고 있다.
오늘날, 이 선물이나 뇌물은 사회의 한 병폐로 변질되었다. 그것은 곧 좋은 지위나 치부를 하는, 하나의 첩경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사회의 부패는 바로 이 뇌물이나 선물의 제도화를 두고 말하게 끔 되었다.
미국 맥밀런사 발행「사회 과학전」을 보면 선물(gift)은 원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주고받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혹은 친척사이에 주고받았다. 그것은 또 응보가 따르지 않는다. 『무엇을 바라고 주는 것』 이 아니다. 기브·앤드·테이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뇌물의 경우는 반드시 무슨 묵계와 예상과 목적이 있다. 말하자면 암묵간에 양해된「무슨 응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슨 응보가 있고 없고는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선물도 장기적으로는 무슨 응보가 무의식간에 있기 마련이며, 그러리라고 또 상호간에 믿는다. 따라서 뇌물과 선물의 구별은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뇌물은 어느 사회에서나 법에 의해 구체적인 범죄로 성립한다. 우리 나라 형법은 제129조와 제133조에서『직무와 관련되어 받은 이익을 총칭하며 이로 인해 제공자와 대가 관계가 있을 때에는 죄가 성립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수뇌혐의 사건들이 법정에서 번번이 무죄판결을 받아 물의를 빚고 있다. 한 판결문에 따르면『피고인 자신이 이를(뇌물) 요구한 것이 아니고『피고자가 직접 전한 것이 아닌 만큼 뇌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 했다. 또『…섭외비로 쓴 것으로 인정되어 뇌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구절도 있다.
『달라고 요구해야』, 『직접 전 해야』, 『치부의 증거가 있어야』 비로소 뇌물이 된다는 말이라면 그 이심전심과는 어떤 관계일까. 뇌물을 가령 자선에 사용했다고 해도 그것이 용납되지는 않는다. 이 경우는 수뇌자 자신의 문제일 뿐 증뇌자와 수뇌자의 관계는 엄연한 사실로 남아 있는 것이다. 전달방식도 수뇌 자체의 의미를 변질시킬 수 없다.
뇌물의 한계가 모호한 사회는 정의와 도덕의 의미까지도 역시 모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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