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 이산가족 상봉 받아들여 진정성 보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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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호 02면

북한 국방위원회는 18일 “중대 제안 실천행동을 먼저 보여주겠다. 남측도 긍정적으로 나오라”며 노동신문을 통해 밝혔다. 진정성 있는 자세라면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반응이다. 인도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철통 안보 태세를 기하라”고 외교·안보 부서에 지시했다.

그동안의 북한 행태를 보면 제의-거절-반박의 사이클 뒤엔 공격적인 태도 변화가 일어나곤 했다. ‘언어 도발’은 왕왕 ‘무력 도발’의 전조였다. 2010년 1월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핵공격 징후가 포착되면 바로 타격한다”고 하자 북한은 총참모부까지 나서 협박한 뒤 3월 26일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다. 연평도 포격 도발도 비슷했다. 천안함 사태 이후 정부가 대북 심리전 재개 방침을 밝히자 총참모부는 “전면적 군사 타격에 진입할 것”이라고 하더니 11월 23일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 국방위의 16일 ‘중대 제안’이 우리 정부엔 고성능 화약에 연결된 도화선처럼 비칠 수 있다. 삼킬 수 없는 가시가 잔뜩 들어 있는 위장 제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상호 비방 금지는 우리와 관계없이 북한 스스로 하면 되는 일이다. 키 리졸브 훈련도 방어 훈련일 뿐이며, 북한과 따로 상의할 대상도 아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소위 ‘서해 5도 자극행위’는 연평도 포격 이후 우리의 방어를 위해 시작된 것이다. 이를 중지하라는 건 남의 담을 부숴놓고 못 고치게 하는 꼴이다. 핵 재난을 막기 위한 상호 조치라는 것도 북한 비핵화를 어물쩍 넘긴 채 미국과 군축회담을 하겠다는 얘기다. 그래서 남측이 거부하니 중대 조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 정부의 보수적인 반응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만하다.

북한이 선언한 ‘중대 조치 실현’에 진정성을 담으려면 먼저 인도적 조치부터 가시적으로 내놔야 한다. 그중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에 호응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박 대통령의 상봉 제의를 잇따라 거부했고 최근엔 “전쟁 연습이 그칠 새 없는데 마음 편히 만나지 못한다”고 변명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요, 자기모순이다.

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 발발 3개월도 안 된 2002년 9월 13일 5차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대청해전(2009년 11월 19일) 약 1년 뒤인 2010년 10월 30일에도 18차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은 가능했다. 이는 남북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는 건강 문제로 언제 사망할지 모를 고령 이산가족을 위한 인도적 사업이다. 북한 국방위는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는 것이야말로 ‘중대 조치 실현’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지름길임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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