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애급군의 격리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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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5년간이나 끌어온 중동전쟁의 두 주요 교전국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제4차 전의 휴전 성립 후 근 3개월만에 「수에즈」운하 전선에서 대상 중이던 양국 군을 격리시키는 협정에 조인하고 철수를 곧 시작한다.
이 협정에 따라 운하 동·서 양안으로부터 「이스라엘」군 및 운하동안의 「이집트」군 병력이 즉각 감축되고, 양군간의 격리지대에는 대신 「유엔」군이 진주하여 국부적 충돌이나 항변 등 전쟁 재발의 요인은 그만큼 해소됐다.
물론 이 격리 협정은 「아랍」·「이스라엘」간의 단계적 전쟁상태와 숙원을 풀고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길고도 험난한 정치협상을 위한 제1보로서의 군사타결에 불과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이번 협정의 두 가지 중요 의의는 간과할 수 없다.
즉 「아랍」제국이 「카르툼」의 정상회담에서 밝힌바, 「이스라엘」과는 직접 협상도, 평화도 있을 수 없고 그 국가적 존재 인정도 있을 수 없다는 선언의 비현실적 강경 입장을 벗어나 「제네바」회담에서 직접 대화했다는 사실은 역사적 의의가 있다 하겠다. 또 비록 미국의 중재와 세계 여론의 압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양편이 강제에 의한 합의가 아니라 서로 자유로운 입장에서 전장을 떠나 협상「테이블」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골다·메이어」수상 정부는 당석의 상실로 인한 내정에서의 입장 약화에도 불구하고, 또 「사다트」「이집트」대통령은 「시리아」와 「리비아」 등 일부 강경 「아랍」국가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대 관계의 종식에 주저하지 않은 것은 전란에 시달린 중동주민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실로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도 지적한바와 같이 이번 격리 협정조인 후에 있을 정치협상의 전도에는 25년 전쟁에서도 해결 못한 복잡다단한 난제들이 가로 놓여있다. 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아랍」영토의 처리, 기독교·회교·유태교의 성지라고 할 「예루살렘」의 지위, 2백만 「팔레스타인」유랑 난민의 재 정착, 안전이 보장되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국경선을 선정하여 「이스라엘」국가를 승인하는 문제 등 그 어느 하나도 한 두 차례의 회담정도로써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이번에 조인을 본 군사협정의 타결 과정을 통해 협상이 전쟁의 재발보다 나온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만은 틀림없다. 19일「이집트」의 「사다트」대통령이 「시리아」에 도착, 조인된 군사격리 협정의 내용을 알리고 「하폐즈」「시리아」 대통령의 설득에 나선 것도 그러한 인식의 고무적인 성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 협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승자대 패자의 그것이 아닌, 적어도 현실적인 감각 속에 호양의 정신이 일관돼야 할 것이다.
어느 국가이건 대가로 무엇인가 얻을 수 있는 전망이 서지 않는 한 일방적인 양보만 하도록 기대할 순 없다.
양국군의 군사적 격리가 이뤄졌다 하여 67년 6일 전쟁 후의 전쟁도 평화도 아닌 긴장 상태를 되풀이해선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제4차전은 「아랍」·「이스라엘」간 장기전의 또 한차례의 전투에 부과하게 될 공산이 크다.
외부의 군사·경제 지원으로 장기전을 치른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은 무장병영과 같은 상태를 하루속히 벗어나 평화로운 공존의 터전을 마련하여 국민의 복지문제에 국가적 「에너지」를 경주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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