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권오준 포스코'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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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포스코를 이끌 차기 회장에 권오준 기술총괄사장이 내정됐다. 연임에 성공했던 전임 정준양 회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면서 말이 많았지만 이사회가 포스코를 잘 아는 내부 인사를 새 회장 후보로 추천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로써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이어져 온 내부 승진과 전문경영인 체제란 원칙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권 내정자는 대표적인 기술통(通)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금속공학 박사 출신으로 기술연구소장·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을 지냈다. 이사회는 그를 ‘장기적 성장엔진을 육성하는 등 포스코 그룹의 경영 쇄신을 이끌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포스코를 둘러싼 경영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5년 전 7조원을 넘어섰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3조원으로 떨어졌다. 철강 경기가 급속히 나빠진 데다 중국이 신흥 강자로 등장하면서 공급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 극복을 위해 전임 회장이 추진했던 사업다각화는 되레 포스코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6개이던 계열사 수가 70여 개로 늘었지만 부채 비율은 60%에서 87%로 높아지고 신용등급도 하락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란 말이 나올 정도다.

 차기 회장 앞에 놓인 과제와 책임도 그만큼 무겁다. 당장 헐거워진 곳간을 다시 채우고 미래 성장 동력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정권 교체 때마다 CEO가 바뀌는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외풍에 흔들리는 지배구조로는 세계 철강업계의 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조차 버거울 수 있다. 내부 혁신도 시급하다. 철강업계에선 “OB(Old Boy)들의 기득권 챙기기가 포스코 경영 악화의 큰 이유”란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이런 풍토를 바꿀 투명 경영이 서둘러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경영 간섭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CEO의 임기를 확실히 보장하고 책임 경영이 가능하도록 놔줘야 한다. 더 이상 포스코를 ‘민영화한 공기업’ 취급해 입맛에 맞는 CEO를 앉히려고 조직을 흔드는 일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