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사 백40발 공포의 22시간-동대구역 인질사건 상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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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해첫날 귀성객으로 붐비던 동대구역은 카빈과 권총을 휘두르며 느닷없이 나타난 탈영병 조효석 하사의 분별없는 난동으로 공포와 전율의 도가니 속에 피로 얼룩졌다.
동대구역 일대 주민들은 밤새껏 올리는 총소리에 소스라치고 귀성의 기대와 즐거움에 차있던 많은 여행객들이 인질로 시달리거나 목숨을 잃었다.
▲1일 하오8시5분부터 2일 하오6시30분까지 22시간25분 동안 무법자가 벌인 난동의 원인은 어이없는 것이었다.
▲1일 하오8시 이후=8시5분쯤 2층 다방으로 뛰어 올라간 조 하사는 다방입구에서 「카빈」과 권총을 양손에 들고 공포 1발을 발사한 뒤 이어 계속 3발을 쏘면서 1백여 명의 다방손님들을 향해『남자들은 모두 나가고 여자들만 남아라』면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 50여명을 인질로 잡았다.
▲2일 상오0시 이후=부산 발 서울행 특급 은하호가 기적을 올리며 동대구역 8번 굴을 통과하자 조 하사는 거의 발악적으로 총을 쏘아댔다.
상오2시30분쯤 갑자기 역 주변의 민가에서 개짓는 소리가 나자 범인은 다시 총격을 난사, 유탄이 군수사본부인 TMO지구대장실 서쪽 창문의 「알루미늄·샤시」에 박혔고 곧이어 대합실에도 한방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2일 상오4시 이후=열차 편으로 도착한 대대장 이 중령은 역구내방송을 통해 『대대장으로서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 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테니 솔직 담백하게 얘기를 나누자』고 두 차례나 방송했다.
▲2일 상오6시 이후=형 정석씨와 누나 봉인씨(27), 매형 등 가족이 사건현장에 도착, 범인의 어릴 때 이름(준석)을 목메게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2일 상오6시 이후=이 중령이 『내가 네 누나와 함께 올라가겠다』고 말한 뒤 이층 계단에서 설득했으나『올라오면 쏴버리고 나도 죽는다』고 범인은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설득에 실패한 가족들이 다시 상오7시30분께 전화기와 「라디오」를 갖고 올라갔을 때 「티·테이블」과 의자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입구 창문을 깨뜨려버린 채 총구를 겨누고 있는 범인은 『접근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입구에서 약10m 거리를 두고 가족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 대대장 이 중령이 뒤따라 올라가 『술 한잔 나누며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범인은 『난 어차피 사람을 죽였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살아난다 해도 옥살이 끝에 인생 낙오자가 되고 만다』면서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2일 상오11시 이후=범인의 이종사촌누나인 윤미경 여인(37·경북 포항시 죽도동340)이 현장에 도착, 이어 하오12시10분엔 범인과 의남매를 맺어 가깝게 지내던 영천여중3년 손 모양(17)등 2명이 도착, 각각 이층다방으로 올라가 범인을 설득하는데 합세했다.
▲2일 하오6시10분 이후=이 중령과 범인이 술잔을 주고받는 순간 옆에 있던 범인의 이중사촌누나 윤 여인이 「티·테이블」위에 놓인 「카빈」소총을 잽싸게 집어 밖으로 뛰쳐나왔으나 제 바람에 놀라 역시 2층 복도에서 기절해버렸던 것이다.
하오6시30분쯤 수사본부장이 직통전화로 『관대히 처리할 테니 자살한다는 결심을 돌리라. 부사령관인 내가 올라갈 테니 나와 함께 내려오자』고 범인을 설득시킨 뒤 다방으로 올라가자 범인은 쥐고있던 권총을 「티·테이블」위에 올려놓고 거수경례를 했다. 부사령관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권총을 뺏는데 성공했다.
하오6시45분 군수사가관원들에 둘러싸여 이층계단을 밟고 내려선 범인은 대기하고 있던 보드진의 「플래시」세례를 받자 거의 광적으로 발악을 하며 혀를 깨물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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