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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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갑인년의 새해가 성큼 다가왔다. 총소리도 멎었다.
서양 사람들은 제야의 종을 요란스레 울린다. 악몽을 몰아내려는 뜻에서였는가 보다.
『행복한 종이여, 묵은 것을 몰아내고 새 것을 맞아들여라.』「테니슨」은 <인·메모리엄>에서 이렇게 노래했었다. 『허위를 몰아내고 진실을 맞아들여라….』 이렇게, 새해에 대한 꿈이 크기 때문에 이 종을 우렁차게 두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네 옛 사람들은 달랐다. 제야의 총은 함부로 치지 않았다. 꼭 1백7번을 조심스레 은근히 쳤다. 그리고 마지막 한번을 새해가 밝는 순간에 맞춰서 쳤다.
그것은 마치 흉자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는 듯, 악마를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식금년삼백일, 기번풍우기비관. 금년에도 3백하고 예순 닷새 동안 풍우는 몇 번이며 비관은 또 몇 번이나 있을까.
이렇게 ????????????? 노래했듯 예부터새해에 대한 불안이 앞서던 우리네였다. 조심스레 종을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새는 서양 사람들도 새해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최근 착 외지에 이런 만화 한 토막이 있었다.
한 사람은 『세계의 종말은 아직 멀었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또한 사람은 『세계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서로 중얼거린다. 『둘 중의 하나가 비관론자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그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군.』 새해가 밝아온다. 조금도 반가운 징후는 없다. 새해에는 묵은해보다 훨씬 더 잘 살게 되리라고 내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혹은 무슨 고병이, 무슨 재난이 우리를 엄습할 것인지 하는 두려움이 새해에 대한 알량한 꿈에 앞선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어떤 고난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 어느 하루도 건너 뛸 수는 없는 것이다.
법어에 보보시도장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은 등산과 같다지만 여기엔 정상이 없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는 것뿐이다. 발을 옮겨 놓는 하나 하나가 수행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걸을 때에 너무 먼 곳에 눈을 두어서는 안 된다. 너무 발 밑에만 눈을 두어서도 안 된다.
옛 수도자는 호시우행이라 했다. 걸을 때에는 늘 6척 전방을 노려보라는 것이다. 호랑이가 걸을 때 그런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처럼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한발 한발을 옮겨가라는 뜻이다. 새해는 호랑이의 해. 무슨 일이 닥쳐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호시우행」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만복을 비는 마음에서 다짐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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