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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대의 개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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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로써 막을 연 갑인년을 「미래시대의 개원」(The First Year of The Future)이라 특정지은 이가 있다. 「과거 시대」가 홀연히 종말을 고한 1973년을 영원히 묻어버리고, 이제 모든 것이 불안정한 격동 속에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진통을 겪어야할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 올해로부터 시작되는 한 국민의 미래시대는 우리의 의식구조와 가치기관 그 밖의 생활방식 등 모든 영역에 걸친 일대전환, 즉 심층적인 구조개선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심층구조의 개편>
작년이래 간헐적으로 계기한 갖가지 국내외 사건들이 던져준 이례적인 충격의 요인들도 실은 이 같은 시대사적인 「임팩트」를 결부시켜 생각할 때에 야만 비로소 옳은 이해에 접근할 수 있다.
반공국가 한국의 「이미지」를 하루 사이에 1백80도 전환시킨 것 같던 지난해의 6·23 외교선언, 김대중씨 사건, 학원·언론계·종교계 등 지식층 일각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했던 일련의 사태발전. 연율 20%라는 기적적 경제성장으로부터의 후퇴가 불가피하게된 경제성장. 이 모든 일들은 요컨대 지금 우리의 정치 행태, 경제운영, 또는 국민의 의식구조 등 모든 면에 걸쳐서 어떤 획기적인 전환이 불가피함을 최종적으로 가르쳐준 조짐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리하여 미래시대의 개원은 누구의 눈으로도 가릴래야 가릴 수 없고,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기대사명의 도전이 우리 모두 앞에 던져지고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 같은 도전의 심각성은 지금 전 세계를 진동시키고 있는 유류 파동의 「임팩트」를 깊이 성찰하는 것만으로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것은 미래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징표라 할 수 있는 총체적인 물량 부족시대가 결코 일시적인 경제적 불황의 예고와 동일시 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함으로써도 족하다. 물량 부족시대란 단순히 일부 물자의 부족현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뜻만을 가진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물량의 의미 멸실>
미래시대의 특성인 총체적 물량 부족시대란 지금까지의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탱케 해준 물자의 생산과 수급과 소비의 「패턴」을 근저에서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될 사회상황이 조성됐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것은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까지의 경제 및 정치의 관계, 분배와 복지의 관계, 그리고 국민의 가치관의 기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면적이고 심부 침투적인 구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안될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 『80년대의 풍요』를 위해 경제 제일주의를 밀고 나가야겠다는 명제가 전제로 하고 있던 물량주의적 정치 행태의 의미 상실로도 통한다. 왜냐하면 미래시대의 개원이란 그 같은 물량적 풍요의 악화가 이미 존재할 소지를 잃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로써 막을 연 미래시대를 이끌어 나갈 「에토스」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초물량주의적 가치질서의 정립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자원 착취형 경제개발의 중지,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의 전환, 국내 부존자원의 최대한 활용, 소득과 분배관계의 복지 지향적 균형조성 등이 그 경제적 측면이라 한다면, 국민의 자유 및 창의성의 신장, 문명 국가로서의 국가위인 선양 등을 통해서 물심양면에 걸쳐 국민 대중이 갖고 있는 생산적「에너지」를 국가 사회발전의 추진력으로 삼는 제도적 장치를 기능시키는 것이 그 정치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진실대면의 용기>
이렇게 볼 때, 우리 앞에 닥친 미래시대의 도전을 극복하는 길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다. 고사에도 궁하면 통한다 하였거니와, 그 길은 모든 일이 벽에 부닥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국에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뚫리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요는 풍성 풍성한 것을 쫓던 「과거 시대」가 쌓아놓은 두터운 벽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 적나라한 진실에 대면하고 사태의 본질적 시정을 간행할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개인의 경우에 있어서나 집단의 경우에 있어서나 진퇴유곡의 난을 뚫고 나가는 길은 이 진실에 대면할 용기와 원리 원칙에 따라 사태를 발본색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성실성을 갖는 것밖엔 없다.
여기, 변화의 가속화와 가치기준 자체의 전면적 개편이 불가피한 요청으로 대두하고 있는 미래시대의 개원에 즈음하여 다시 한번 본연의 추구와 원정원칙의 확립을 강조해야할 소이가 있다.

<합리주의와 가치>
이 같은 가치 질서를 지탱하는 원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합리주의와 가치 추구를 현실사회에서 확립하는 것이요, 또 나아가 개인과 집단 사이에 있어 신의·정직·근면·절약 등의 가치가 최고의 미덕으로 통용되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무리와 몰상식이 도리어 합리와 상식을 비웃고 통용하던 사회풍토, 원리원칙이 무시되어 자칫 수단이 목적을 종속시키던 본말전도, 본질적인 것과 말초적인 것에 대한 가치 서열이 허물어지고 량의 독주 때문에 질적 발전이 저해돼 오던 것과 같은 가치도착을 청산하고, 천지간의 순리에 돌아가는 것만이 격동하는 미래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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