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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굴이 밥상에 오르면 큰절부터 올릴 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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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굴의 계절이다. 요즘 굴은 살집도 붙고 여물어 제법 씹는 맛이 산다. 값도 싸다. 부산을 마지막으로 김장철이 끝나면서 가격이 잡혔다. 부산에서 김장을 하면 굴 시세가 ㎏에 1000원 뛴다는 말이 있다.

 경남 통영은 굴의 고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굴의 70%가 통영산(産)이다. 통영 굴은 흔히 양식 굴로 불린다. 서해안 갯마을처럼 아낙이 섬 그늘에서 따온 굴이 아니어서다. 그렇다고 통영 굴을 양식(養殖)이라고 단정하기도 그렇다. 사료를 받아먹고 크는 게 아니어서다. 하여 통영에는 굴 양식장이라는 단어가 없다. 굴 작업장이 있다.

 통영의 굴 작업장은 250개가 넘는다. 전체 면적은 5371㏊다. 축구장 8000개 크기다. 통영 앞바다 태반이 굴밭인 셈이다. 실제로 통영은 굴을 수확한다. 종패(種貝)라 불리는 씨받이 조개를 줄에 묶고 바다에 담근 다음 이태를 기다린 뒤에 길어올린다. 겨울 아침 통영 앞바다에서는 주렁주렁 굴을 매단 줄이 고구마 줄기 모양 줄줄이 올라온다.

 통영에서는 자기네 방식을 수하식(垂下式)이라고 한다. 한자를 유심히 보시라. 수하식(水下式)이 아니다. ‘그림자가 드리우다’고 할 때 그 ‘수(垂)’다. 위로 자라는 풀이 아래로 내려진 꼴에서 비롯된 한자다. 수직으로 내린다는 뜻이겠지만, 굴을 대하는 통영 사람의 태도가 읽힌다. 미역을 드리운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작업장에서 수확한 굴은 박신장(剝身場)으로 옮겨 껍데기를 벗긴다. 이름을 다시 보시라. 알굴을 몸이라 부르고 있다. 통영은 그저 굴이 많아서 굴의 고장이 된 게 아니다. 통영에서 굴은 갯것 이상의 존재다.

 박신장 내부는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공장 같다. 길게 마주 앉은 아지매 40여 명이 하루 12시간 꼬박 껍데기를 깐다. 칼을 집어넣어 껍데기를 벌리고 알굴을 꺼내 바가지에 담는 일련의 동작이 기계처럼 일사불란하다. 굴을 깐 양만큼 돈을 받는다. 손을 놀린 만큼 손해다.

 알굴 1㎏을 까면 2500원 정도 받는다. 알굴 하나가 8∼9g이다. 알굴 하나를 10g으로 쳐도 100개를 까야 2500원이다. 손이 빠르면 하루에 15만원도 챙긴다. 못해도 60㎏ 이상, 다시 말해 하루에 6000개 넘게 굴을 깐다는 뜻이다. 겨울 한철 통영 일대에서 1만 명이 넘는 아지매가 날마다 되풀이하는 산수다. 눈물겨운 산수다.

 손이 굼뜬 한 할매를 지켜봤다. 칼을 든 손목에 파스가 붙어 있었다. 한 바가지 겨우 채워 저울로 옮기다 그만 바가지를 놓쳤다. 허겁지겁 주워 담는 할매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시선을 피했다. 일터에서 머리 조아리는 아비와 맞닥뜨린 것처럼 얼굴이 뜨거웠다. 이제부터는 말이다. 밥상에 굴이 오르면, 큰절부터 올릴 일이다.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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