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작은 고추, 씩 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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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헤지펀드는 대표적인 고위험·고수익 상품이다. 지난해 코스피 지수가 0.72% 성장하는 동안 23%가 넘는 수익을 올린 펀드가 나왔다. 반면 수익률이 나빠 소리 없이 사라진 펀드도 많다. 일반 투자자가 선뜻 투자하긴 어렵다. 그래서 정부도 기관이나 전문투자가 혹은 5억 이상 투자하는 개인만 가입할 수 있도록 해 왔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헤지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모재간접펀드를 허용하기로 했다.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공모펀드가 생긴다는 얘기다. 이제 일반 투자자도 헤지펀드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지난해 말 군인공제회가 헤지펀드 운용사 6곳을 불러 투자설명회를 진행했다. 군인공제회가 투자를 결정하면 자산 5조원 이상인 3대 공제회(군인공제회·교직원공제회·행정공제회)가 모두 헤지펀드에 투자하게 된다. 행정공제회는 지난해 3월 헤지펀드에 400억원을 투자했고, 교원공제회는 6월 총 600억원의 자금을 헤지펀드 운용사에 위탁했다.

 #지난해 8월 대신운용은 ‘재야의 고수’로 불리는 김현섭 전무를 롱숏전략운용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증권사 투자대회에서 5년 연속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김 전무는 2006년까지 자산운용사와 증권사에서 일하다 재야로 돌아간 상태였다. 서재형 대표가 삼고초려했다는 후문이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대신 에버그린롱숏펀드는 설정 3개월여 만에 1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모았다.

 만 두 돌을 맞은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1년 12월 출범 당시 2370억원 수준이던 게 지난해 10월 1조8429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운용사들도 인력을 모으고 신규 펀드를 설정하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금융위도 헤지펀드 운용권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등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하며 날개를 달아줬다.

 헤지펀드의 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공모펀드 시장의 부진과 맥을 같이한다. 최근 몇 년간 코스피가 박스권 안에서 횡보하고 있다. 대부분 펀드는 코스피 지수가 오르는 만큼 수익을 내거나(인덱스 펀드) 그 이상의 수익을 내는 걸(액티브 펀드) 목표로 한다. 코스피가 박스권에 갇히면 주식형 펀드가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반면 헤지펀드는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한다. 비결은 전략에 있다. 공모펀드가 주식을 저가에 사들여 고가에 파는 한 가지 전략만 쓴다면 헤지펀드는 다양한 전략을 쓴다. 주가가 오를 것 같은 종목은 사고 주가가 떨어질 것 같은 종목은 주식을 공매도하는 롱숏전략을 예로 들어보자.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팔았다가 되사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롱숏전략을 활용하면 하락장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 이외에도 채권롱숏전략, 이벤트추구형 전략, 컨버터블 전략 등이 널리 쓰인다.

 헤지펀드 시장에선 공모펀드 시장의 ‘작은 고추’들이 맵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설정액 2000억원 이상인 운용사는 브레인운용(4940억원)과 삼성운용(4862억원), 트러스톤운용(2716억원), 대신운용(2037억원)이다. 공모펀드 시장 대형 3사(미래에셋·한국투자신탁·KB) 중 한국투자신탁과 KB운용은 2012년 말 운용하던 펀드를 청산하고 헤지펀드 시장에서 발을 뺐다. 반면 브레인운용은 아직 공모펀드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고, 트러스톤운용은 2008년 첫 공모펀드를 출시했다.

 이동훈 우리투자증권 주식트레이딩본부장은 “헤지펀드와 공모펀드 시장이 철저히 분리된 미국과 달리 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수탁고가 일정액 이상인 운용사에 헤지펀드 운용권을 주다 보니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대형사의 소위 A급 매니저들은 헤지펀드 도입 당시 이미 주요 공모펀드 운용을 맡고 있었다. 자연스레 외부에서 영입한 인력이나 사내 유휴 인력을 중심으로 운용팀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공모펀드 시장에서 약세였던 운용사는 임원 등 주요 인력을 배치해 승부를 걸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팀장급으로 운용팀을 꾸린 대형사와 달리 본부장급으로 팀을 만든 삼성운용 정도가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익률은 높은 편이다. 브레인운용의 백두 헤지펀드가 지난해 23.36%로 1위에 올랐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일본 제외 아시아 주식 롱숏 헤지펀드가 2위(21.22%)를 차지했고, 10~12%의 수익률을 낸 삼성운용의 헤지펀드 3개가 그 뒤를 이었다. 트러스톤운용의 탑건코리아롱숏 헤지펀드와 대신운용의 에버그린롱숏 헤지펀드는 각각 설정된 지 6개월, 3개월 만에 7.14%와 10.4%의 수익을 냈다. 수익률을 보면 운용 스타일을 알 수 있다. 20% 넘게 수익을 낸 브레인운용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고수익을 추구하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변동성이 큰 게 단점이다. 10% 수준의 수익률을 비교적 꾸준히 내는 삼성운용은 중위험·중수익 유형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헤지펀드 시장에 처음 진출한 트러스톤운용과 대신운용은 브레인보단 위험이 작고(저수익) 삼성보단 수익이 큰(고위험) 운용 스타일을 구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27개 펀드 중 절반 이상이 주식 롱숏전략을 쓴다는 건 한국 헤지펀드의 약점이다. 김우재 우리투자증권 에쿼티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도입 초기다 보니 펀드매니저에게도, 투자자에게도 익숙한 롱숏전략을 쓰는 펀드가 대부분”이라며 “향후 다양한 투자 전략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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