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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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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본 닛케이지수가 14일 전날보다 3.08% 떨어진 1만5422.40으로 마감했다. 지난해 11월 5928억 엔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는 소식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 블룸버그는 “이번에 기록한 적자폭은 월 기준으로는 1985년 이후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도쿄 시내에 세워져 있는 증시 전광판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도쿄 AP=뉴시스]

연초부터 기세등등하던 ‘아베노믹스’가 암초를 만났다. 경상수지 적자가 29년 만에 최대치로 불어난 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리더십 위기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일본 주가는 14일 3% 넘게 추락했다. 이날 닛케이225는 전날보다 489.6포인트(3.08%) 내려 1만5422.4로 거래를 마쳤다. 예상치 못한 추락이다. 도쿄 주가는 지난해 말까지 두 달 동안 거침없이 올랐다. 10% 정도 훌쩍 뛰어 1만6000선을 뛰어넘었다. 올해도 그 흐름이 이어질 듯했다. 그러나 이날 두 가지 악재가 발목을 잡았다.

 일본 재무성은 “지난해 11월 경상수지가 5928억 엔(약 6조702억원)에 달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이는 도쿄 증시 전문가들의 예상치(3804억 엔)보다 훨씬 많다. 1985년 이후 29년 사이 최대치다. 무역수지는 20개월 연속 적자였다. 지난해 11월 일본 무역수지는 1조3543억 엔에 달했다. 한 해 전 같은 기간보다 3690억 엔이나 늘었다.

 재무성은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바람에 에너지 수입이 크게 늘고 있는 와중에 엔화 가치가 떨어져 엔화 표시 적자 폭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구조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로이터는 다케시 미나미 노린추킨연구센터 선임 이코노미스트의 말을 빌려 “소비세가 인상되기 전에 서둘러 수입품을 사두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다”며 "4월이 지나면 다시 수입품 소비가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엔저 공세에도 경상수지 적자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은 심상찮은 조짐이다. 수출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아베노믹스가 한계를 드러낸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메리츠종금증권 김중원 투자전략팀장은 “일본의 수출이 약해진 건 일본 제품의 국제 경쟁력 약화와 전력난, 해외생산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면서 “엔저에도 경상수지 적자는 만성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상수지 적자의 구조화는 일본에 치명적이다. 일본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보다 두 배나 많다. 2014년 말엔 244%에 이를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일본의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재정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으면 일본이 빚을 갚기 위해선 해외에서 빚을 끌어와야 한다. 이는 일본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 국내 정치지형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다음달 9일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선언했다.

 비(非)자민당 호소카와 전 총리를 자민당 원로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지지한다는 소식이 흔들리고 있던 도쿄 증시에 충격을 더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지며 일본 정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 수 있어서다.

 일본 정치의 불확실성은 장기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의 한 원인이었다. 1990년대 초 ‘가미카제 거품’이 붕괴한 이후 일본 총리들은 취약한 리더십 때문에 과감한 정책을 쓰질 못했다. 로이터통신은 “두 전 총리의 이날 기자회견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되풀이된 취약한 정치 리더십 악몽을 되살려낸 꼴”이라고 전했다. 더욱이 아베가 ‘세 번째 화살’인 경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선 올해 더 강력한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의료산업 등 서비스 산업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참에 리더십 균열은 아베노믹스 세 번째 화살의 불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남규·안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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