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강』을 보고 역사의 논리 직시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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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역사적 사실에서 취재한 희곡은 그렇지 않은 희곡이「픽션」을 동양화한다. 이는 곧 고경된 시간 속에 갇혔던 역사적 사실을 보편적 시장성 속에 해방시키고 정지된 생명을 생동하는 생명으로, 특정된 의미를 추상화된 의미로 전환시킨다는 것을 말한다.그래서 훌륭한 사극이라면 그 생명과 가치는 역사의 정확한 묘사에 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내면적 진실성과 유기적 연관성에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동천강』은 실패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조 말 김옥균 일파에 의한 개화 「쿠데타」 의 실패를 이 「쿠데타」 를 뒤에서 조정한 일본측에다 「앵글」를 잡고 검증해 본 이 작품은 김옥균 일파의 어리석음이나 다께소 빈 일본공사(김순철) 의 농간과 배신에 울분을 터트리기에 앞서 역사가 안고있는 객관적인 논리를 직시 하도록 했어야만 했다.
이러한 사극은 마땅히 작가의 감정 (편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을 지성으로 극복하고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떤 역사의 앞에서 다같이 우롱당한 인간에게 평형의 원칙을 적용해야만 된다. 그러나 작가 오영쇄씨의 지사적 울분은 처음부터 이미 평형을 잃고 있었다 (씨는 이를 「역사의 허탈) 했지만) .
일본측을 희화화 하면서 김옥균 일파에게는 경직된 목소리를 준 글」의 불일치,대결의 논리성이 전혀 결여된 개화파의 성격부재 (그러면서 꽤 그들을 무대 위에 굳이 등장시켰는지 모르겠다) 일본측 입장에 역사적 필연성이 부족한 점등은 이 극에 내면적 진실을 부여하지 못했고 (내용이 아무리 사실과 일치한다 해든 따라서 종말의 그 충격의 동천강(일장기)이 충격이 아니라 불쾌감으로 바뀌고 말았다.불쾌감으로 말하면 김옥균 일파가 일본으로 압송되기 위하여 용수를 쓰고 변장해 나왔을 때 더했다.
희극이면서 오영쇄씨 특유의 해학과 풍자의 연공법이 괴팍하고 건조한 강공법으로 연극의 재미를 상실 시킨데는 연을자(나영세)의 단순한 해석과 힘겨운 부담감도 큰 작용을 했다.역사의 희극성을 의양적인 희극투로 착각한 것은 잘못이다.적역의 오현경(시마무라),적절히 활용된 궁녀와 외국사절은 감사를 작가에게 들려야겠다.
무성격한 무대장치는 없느니 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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