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이동로 동시공격, 암세포 죽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고규영 교수(왼쪽)와 김찬 박사.

암치료는 흔히 전쟁에 비유된다. 암세포는 ‘게릴라’다. 정상 세포와 달리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무한증식을 한다. 과거에는 이런 암세포를 잡으려 ‘무차별 폭격(전통 항암제)’을 했다. 그 탓에 ‘민간인(정상 세포)’까지 큰 피해를 봤다. 반면 요즘은 암세포만 골라 때리는 ‘정밀 유도공격(표적 항암제)’이 각광받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암의 ‘보급로’와 ‘이동로’를 동시에 끊는, 새 공격법(차세대 항암제)의 실마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견됐다.

 KAIST 의과학대학원의 고규영(57) 특훈교수, 김찬(34) 박사 연구팀은 ‘RhoJ’라는 단백질이 암혈관의 유지·성장에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13일 밝혔다. 암 분야의 유력 국제학술지인 ‘캔서 셀(Cancer Cell)’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서다. 암혈관은 암세포에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는 ‘보급로’ 역할을 한다. 또 암이 다른 조직으로 전이(轉移)될 때 ‘이동로’ 구실을 한다. 이 혈관이 막히면 암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게 된다.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RhoJ를 없앤 쥐를 만들었다. 이 쥐는 일반 쥐에 비해 폐암·유방암·피부암의 성장·전이가 50% 이상 적었다. 연구진은 이어 암 발병 쥐의 RhoJ 발현을 막아 치료 효과를 살폈다. 실험 결과 세포 중앙의 암혈관이 붕괴하고 가장자리 혈관 성장이 억제되는 것을 확인했다.

 암혈관을 표적으로 한 항암제는 이미 쓰이고 있다. 미국 제넨테크사가 개발한 아바스틴이 대표적이다. 대장·신장암 등에 효과를 보여 연 6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약이다. 하지만 이 약은 암세포 가장자리에 새 혈관이 생기는 것만 막는다. 반면 RhoJ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가 개발되면 암세포 중앙 혈관(암 유지 기능)과 가장자리 혈관(암 성장 기능)에 대한 ‘이중 공격(double assault)’이 가능해진다. 논문에 따르면 기존 암혈관차단치료법이 암 크기를 39%, 암혈관 크기를 43% 감소시키는 반면 RhoJ 치료법은 각각 48%, 52% 감소시켰다. 두 치료법을 함께 사용했을 땐 암은 67%, 암혈관은 71%까지 줄었다.

 RhoJ 치료법의 또 다른 장점은 부작용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기존 암혈관억제제는 장기간 사용하면 내성이 생긴다. 일부 환자에게는 고혈압·단백뇨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표적물질이 암혈관뿐 아니라 신체 다른 조직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반면 “RhoJ는 거의 100% 암혈관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부위에 대한 독성이 없을 것”이란 게 고 교수의 설명이다.

 연세대 암센터 라선영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이제 기초연구 결과가 나온 것으로 실제 약을 개발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도 “하나의 약으로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새 표적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임상의사로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