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마리 600만원인데 … 1300만원짜리 키운 한우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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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는 한우들과 함께 선 전남 고흥의 축산농부 김춘만(62)씨. 독특한 사료 먹이기 노하우로 육질 좋고 덩치 큰 값비싼 한우를 키워낸다. 먹이는 물은 지하 60m에서 퍼올린다. 그는 “소 살코기 성분의 70%가 물”이라며 “얼마나 좋은 물을 쓰는지에 따라 육질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해 6월 950만원, 8월에 또 950만원. 남들은 소 한 마리 팔아 600만원이면 수지 맞았다는데 그는 유독 높은 값을 받았다. 그러더니 지난해 12월 5일 그가 키운 거세 수소 한 마리가 충북 음성 소시장에서 1331만4000원에 팔렸다. 뼈와 내장을 제거한 순수 고기(지육)값이 이렇다. 좀체 보기 드문 기록이다. 소 무게가 770㎏으로 보통 소(600㎏)보다 훨씬 커 고기가 많이 나온 데다 품질 또한 최상급이었다. 1++ 등급을 받았다.

 이 소를 키운 김춘만(62·전남 고흥군 고흥읍)씨는 본래 광주광역시의 중소 전구 생산업체 대표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사업이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2002년 사업을 접고 처남 3명이 있는 고흥으로 왔다. 비교적 부유한 한우 축산농인 처남들에게 노하우를 배워 한우농장을 운영해 보려는 목적이었다.

 처음 3년은 자청해 궂은일을 했다. 소똥을 치우고 사료를 주며 가까이서 소를 관찰했다. 처남들에게 혈통 좋은 송아지 고르는 법과 적절하게 사료 주는 법 등을 배웠다.

 2005년 처남들 목장에서 10㎞쯤 떨어진 곳에 자신의 목장을 차렸다. 평소 돌아다니며 눈여겨봐 둔 곳이었다. 처음엔 처남들에게 받은 소 8마리를 2년간 키워 내다 팔았다.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두 마리 육질이 좋지 않더군요. 처남들을 비롯해 한우농가들에 물어 물어가며 해결 방도를 찾았습니다.”

 추천하는 이런저런 방법들을 시도해 본 결과 곡물 사료에 발효된 풀을 섞은 ‘혼합사료’가 고기 질을 높여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혼합사료는 곡물사료보다 비쌌다.

 “사업했던 경험을 살려 주판을 튕겼죠. 사료값이 비싸지만 쇠고기 등급이 확 높아져 값을 잘 받으면 이익이 많이 날 테니까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비싼 사료에 투자했다. 그게 적중했다. 7개월 송아지 한 마리를 사들여 25개월간 키운 뒤 내다팔 때까지 김씨가 들이는 비용은 사료비·송아지값·전기요금·인건비 등을 합해 평균 670만원. 일반 한우농가가 쓰는 530만원보다 140만원이 많다. 하지만 지난해 김씨의 소는 마리당 평균 880만원에 팔려 210만원 이익을 냈다. 550만원에 팔아 20만원을 남기는 여느 농가와 비교가 안 된다. 마리당 가격은 60% 더 받는다. 이렇게 소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는 데는 사료뿐 아니라 물과 영양제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에 걸친 김씨의 노하우가 배어 있다.

 이젠 그가 소를 파는 음성 소시장에서 ‘김씨 소’라면 알아줄 정도가 됐다. 키우는 소는 처음 8마리에서 지금 110마리로 늘었다.

 김씨는 “요즘 한우농가들이 사료값이 올랐다며 점점 값싼 사료를 쓰는데, 그건 소값을 떨어뜨려 손해를 보는 길”이라고 말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될성부른 분야 딱 하나를 정해 머리를 싸매고 전문가가 돼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고흥=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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