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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동양고속 '아산 봉사왕' 이왕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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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지역에서 30년 넘게 버스 운전을 하며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활동에을 하는 이왕수(58·사진)씨가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동양고속 소속인 그는 배차가 없는 날이면 친분을 쌓았던 소년소녀 가장 아이들과 만나 식사를 하는가 하면 학용품을 사주기도 하고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해 ‘집수리 봉사’등을 펼치고 있다. 아산의 ‘봉사왕’이라 불리며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는 그를 9일 만나봤다.

“힘이 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제 작은 도움으로 주변 이웃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죠. ‘봉사왕’이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는 그냥 푸근하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라고 각인되고 싶네요.”

 이날 오후 3시. 아산 고속버스터미널 동양고속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봉사왕’이라는 표현에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일주일에 다섯 번, 하루 5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고된 일정 속에서도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랑의 손길을 이어오면서 소외계층 이웃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사비를 털어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씨는 또 매월 다섯 차례씩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온양한올고등학교와 아산시청 인근, 온양여자고등학교와 신정호 주변 등을 순찰하면서 청소년 범죄 예방에도 앞장서고 있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아이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인도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지만 저의 노력이 아이들에게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웃 도우며 행복 선물 받아”

이씨는 지난 1993년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우연한 계기에 직장 동료와 봉사에 함께 참여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기쁨과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 당시 저는 온양교통㈜ 소속으로 시내버스를 운전했습니다. 지금보다 운전시간이 짧긴 했지만 배차가 잦아 오히려 쉬는 날은 많지 않았죠.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직장 동료 한 분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성남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저도 단순한 호기심에 봉사활동에 동참해봤어요.”

 직장동료와 함께 성남에 소재한 요양원과 보육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한 이씨는 자신의 도움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기쁨을 느꼈다. 그 역시 자신의 고향인 아산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자’는 다짐을 했다. 그 때부터 이씨는 아산지역의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위한 지원에도 힘을 쏟고, 온양정애원 등 복지시설에 지원금을 보태는가 하면 읍내주공과 소화마을 아파트의 소외계층의 이웃들에게는 매년 사비를 털어 집을 수리해주고 쌀과 라면 등 생필품을 전달했다.

 “요양원을 찾아 어르신들을 목욕시키고 보육원 등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뭉클한 마음을 받았어요. 저 역시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사비를 털어 집 수리 등을 해줄 때면 포근한 보금자리를 선물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죠. 이웃을 도와주면서 저 역시 ‘행복’이라는 선물을 받는 듯 합니다.”

핸들은 놓지만 봉사는 계속할 예정

이씨가 시내버스를 운전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 만해도 아산지역은 천안을 비롯한 충남 도내의 타 도시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뎠다. 이에 대중교통 역시 다른 지역보다 낙후됐었다. 시내버스를 운전할 때조차 이씨는 시골길을 혼자 지나다니는 노인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을 무료로 태워 행선지와 최대한 가까운 정류소에 내려주기도 하고 굳이 타지 않겠다는 노인에게는 ‘조심하게 천천히 걸어가시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정성을 보였다.

 “버스 기사라는 직업은 제게 봉사의 참 뜻을 일깨워준 소중한 ‘직업’이에요. 버스로 지역 곳곳을 다니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보면서 ‘쉬는 날에는 저런 분을 꼭 도와야지’하는 마음도 갖게 됐죠. 온양교통 측에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승차권을 배부하자는 건의도 했어요. 그 건의가 받아들여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죠.”

 시내버스 20년, 고속버스 13년의 기사 경력을 갖고 있는 이씨는 올해까지만 일을 하고 내년부터는 핸들을 더 이상 잡을 수 없다. 정년이 1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핸들을 놓더라도 봉사는 힘이 닿는데 까지 지속할 방침이다.

 “저에게는 4명의 새로운 자식이 있습니다. 5년 전 아산시로부터 소개받은 소년소녀 가장들이죠. 우선 이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20여 명의 아버지, 어머니가 계세요. 그분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힘이 돼 드리려고 해요. 내년부터는 핸들을 잡지 않으니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겠죠. 그 생각만 하면 핸들을 잡지 못하는 아쉬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큽니다.”

 지난 20여 년간 봉사활동으로 아산시장, 충남도지사, 충남경찰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아온 이씨. 지난해 7월에는 대통령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로부터도 표창을 받았지만 이씨는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 일은 아닙니다. 봉사를 하면서 ‘주는 사랑’보다는 ‘받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은 것 뿐이지요”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의 핸들 인생은 올해로 종지부를 찍지만 그의 봉사 인생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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