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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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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알렉산더」대왕의 고사에 석유이야기가 나온다. 「아라비아」사막에서 그는 코끼리 군을 앞세운 적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 석유에 불을 질러 이들 코끼리를 온통 쫓아버렸다고 한다. 「페르샤」군을 격파하고, 또「시리아」와「이집트」를 점령한「알렉산더」대왕은 이미 오늘의「파이잘」왕에 앞서 석유의 힘을 과시한 셈이다. BC 330연대의 일이다.
고고학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석유는「수메리안」·「아시리안」·「바빌로니안」시대부터 벌써 볼 수 있었다. 그때는 BC 3천년께 이다.
동양에는 서기300년 무렵 중국에서 소금을 파다가 석유가 나온 기록이 있다. 중국은 12세기께 3천 척 깊이의 지하 정을 팠던 일도 있다. 실로 놀라운 기술이다.
석유가 산업적인 규모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1270년대인 것 같다. 「마르코·폴로」의『여행기』를 보면 북부「페르샤」를 방문했을 때「바쿠」(「카스피안」해의 채유 중심지)의 석유가 무역상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의 대규모산업으로 발전하는 계기는 미국「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타이터스빌」촌에서 찾을 수 있다. 1859년8월「에드윈·드레이크」가 강식정법을 개발하면서 기업화가 촉진되었다. 1861년엔 처음으로 석유가 통나무 통에 담겨 대서양을 건너「런던」으로 수송되었다.
석유의 성분은 원유상태에서 탄소(84∼87%)·수소(11∼14%)를 주체로 유황·질소·산소 등을 소량으로 포함하고 있다. 또 그 독특한 냄새가 인상적이다. 화학적으로 그것은 탄화수소의 복잡한 혼합물로서 그 성상은 산지에 따라 다르다.
석유의 생성에는 제설이 분분하다. 19세기까지 무기적인 성인설이 유력했지만 지금 그것을 믿는 학자는 별로 없다. 현재의 석유 성인설은「포토니」(potonie·1905년생) 라는 학자의 주장으로 대표되고 있다. 그는 일반적으로 바다의 식물과 동물이 근원물질이라는 입장에서 학설을 전개한다. 그러나 근원물질을 특정의 생물로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그 성인이야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은 석유를 인체의 혈액에 비유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중동이 세계「에너지」의 보고처럼 된 것은 우선 그 매장량 때문이다. BP사(브리티쉬·피트롤리엄)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세계의 확정 매장량 중에서 62%가 중동에 묻혀 있다. 미국의 6.6%, 소련·기타공산권의 11.2%에 비교하면 거의 독점상태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파이잘」왕 앞에 세계 거두들이 엎드려있는 만화가 있었다. 고소를 자아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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