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서 주목 끄는 소 여류시인「안나·아크마토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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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제까지 영국·미국 등서 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련의 여류시인「안나·아크마토바」가 최근 미「어틀랜틱」출판판사에서 출판된『「아크마토바」의 시집』간행을 계기로 새롭게 미국과「유럽」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아크마토바」의 시는 지난 63년과 68년「올가·카릴」과「로버트·로웰」이라는 사람이 공동 번역한『미사곡』『답신』(부제『잊혀진 시인들』) 이라는 시집을 통해서 서구사회에 널리 소개됐다.
『의사「지바고』의 작가「보리스·파스테르나크」와 절친했으며 모국인 소련에서는「파스테르나크」와 더불어 제1급의 시인으로 꼽히는「아크마토바」에 관한 기역을 그의 시를 번역, 미국에 소개했으며 지난 62년 봄, 65년 봄을「모스크바」에서「아크마토바」와 함께 지냈던「올가·카릴」은『차디찬 지성을 갖춘 명상적인 여성』이라고 회고한다.
1889년「얄타」근처에서「안나·고렌코」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문학을 시작하면서 할머니의 이름을 따 필명으로「아크마토바」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1세에 첫 시를 쓴 후 1912년『저녁』을 처녀 출판하여「차디찬 명확성」으로「센세이션」을 일으킨 그는 그러나「스탈린」정권 이후에는 큰 불행을 겪었다. 두번째 결혼한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당했으며 자신은 2차 대전 중 거주지역이「레닌그라드」로 한정되었다가 전쟁이 끝나자 소련 작가 연맹에서도 추방되었다.「흐루시초프」집권 후 66년 그가 죽기 전까지는 자유롭게「레닌그라드」에 머물렀던「아크마토바」는『내 시는 우리들이 사는 이 시대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었다.「아크마토바」는 60년「파스테르나크」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소련시단에서 사실상의「리더」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가장 여러 사람의 입에서 낭독되었던 시가 그의 시였고 이미 20세기의 고전으로 그의 시는 꼽혔던 것이다.
소련작가들이 흔히 겪게되는 고립상태가 가장 두렵다고 말한「아크마토바」는 자신의 시집출판이 허용되지 않았던 62∼65년 봄에도 계속 창작을 계획하고 있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사람이었던「파스테르나크」와「아크마토바」와의 친교는 1928년 봄에 두 사람이 교환한 시를 통해서 소련 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듣고 있다.
지붕 위에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얼룩진 작은 얘기들을-. 그리고 학생들의 검은 장화가 보도의 목가를 두드리는 소리들이라고「파스테르나크」가 봄을 노래한데 이어
『그리고 이제
녹아버린「다이어먼드」처럼 웅덩이는
빛을 발하고 얼음은 열망에 휩싸였다』
라고「아크마토바」는 답한 것이다.
큰 키에 화가「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나타나는 여인처럼「핸섬」한 외모를 갖췄던「아크마토바」의 시『미사곡』이 63년「뮌헨」에서 발표된 이후 10여년만에 출판된 이번 시는 소련의 1급 여류시인의 시가 서구사회에 소개되었다는 점하나 만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보그」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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