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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민영이의 힘겨웠던 사다리 오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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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여기 깊은 함정이 있다. 가운데에 긴 사다리가 걸쳐져 있다. 사다리를 통해 함정에서 벗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다리는 삐걱대고 계단도 드물고 성기게 놓여 있다. 누구나 사다리에 오를 수 있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이 씁쓸한 연극무대 같은 현실에서 가끔 씩씩한 주인공이 나온다. 김민영. 26세. 정부위탁 복지기관의 직원이다. 남을 돕는 일을 평생 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다. 지금 그의 미래는 힘차 보인다. 10여 년 전 취재 도중 봤을 때와는 처지가 딴판이다. 이제 2002년을 호출한다.

 서울 최대의 달동네였던 관악구 난곡의 중 2.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 동생 둘과 방 2개의 반지하 셋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병치레를 하다가 운명을 달리하면서 가장은 어머니가 됐다.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야간 서빙을 해 번 수입으로 가족을 돌봤다. 민영이네는 소득계층별로 보면 명백한 빈곤층이었다. 중위소득(전체 소득자를 일렬로 늘어놓았을 때 중간 수준)의 50%에 휠씬 못 미치는 가정이었다.

 민영이는 몇 번이나 학업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민영이의 곁에는 꿋꿋한 성격의 어머니가 있었다. “반드시 공부해서 지금을 넘어서야 해.” 흔들릴 때마다 사다리를 잡아준 존재는 어머니 말고도 있었다. 지역 신림사회복지관이었다. 이 복지관은 ‘호퍼(hopper)’라는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민영이는 이를 통해 공부를 도와줄 대학생을 소개받았다. 전시회·영화·뮤지컬 등 문화행사도 자주 접했다. “가난하지만 정서가 메마르지 않아 나중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2014년의 김민영은 회고한다.

 우여곡절 끝에 수능을 봤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수도권 중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학비 조달이 문제였다. 주변 도움을 받아 겨우 등록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 학기 만에 휴학했다. 어머니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었다. 복지기관 아르바이트, 문서 정리 보조…. 점점 학업에서 멀어져 갔다.

 민영이에게는 재미동포 멘토가 있었다. 복지관이 연결해 준 후원자였다. 민영이는 이 동포를 “언니”라고 불렀다. 휴학 중에도 ‘언니’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언니’는 두 가지를 거듭 강조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는 계속 해야 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성공한다.” 이런 격려에 힘 입어 민영이는 2년간의 방황을 접고 다시 사다리에 오른다. 마침 국가장학금 혜택이 넓어진다. 중상위 학점을 받으면 학비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생긴 것이다. 학업에 집중했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원하던 직장도 잡았다. 어머니도 작은 식당을 차렸다. 민영이네는 이제 막 빈곤층에서 벗어나고 있다.

 김민영씨의 사연을 보며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지 모른다. ‘봐라. 개인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어’. 충분히 교훈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민영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개인의 노력 외에도 건실한 지역복지관이 있었고 현명한 ‘언니’ 멘토도 있었다. 그들이 고비 때마다 사다리를 잡아주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빈곤 탈출률이 뚝 떨어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함정은 깊어졌는데 사다리는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회적 배려 수준이 꼴찌라는 논문도 공개됐다.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우리는 어떤 사다리를 준비해야 할까. 답변 자격이 충분한 김민영씨에게 묻었다.

 “빈곤층 아이들이 좌절하는 건 꼭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서적 지지가 약해 바람에 잘 흔들립니다. 지금까지는 경제·복지 지원에만 주력해 왔는데 교육과 정서, 특히 정서적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데 좀 더 주목했으면 합니다.”

 민영씨는 지난달 첫 월급을 받았다. 가족이 모여 삼겹살 파티를 했다. 그 자리에서 여러 사람의 배려가 풍선처럼 피어올랐다. 그날의 삽겹살은 유난히 고소했으리라.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