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대적인 박물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며칠 전까지 박물관 동편 뜰에 거대한 포장마차 같은 집을 두 채 짓고 전자기기 전시회가 열렸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유수한 「메이커」들도 참가,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초현대적 전자제품들로 꽉 차 있어 관람객이 연일 대만원을 이루었다. 그런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중·고교생 및 대학생이 많다는 사실이다.
박물관도 관광 「시즌」이 되어 내외손님이 많은데다가 전자전까지 겹쳐 대성황이나 어딘지 마음 한구석 허전함이 있었다. 박물관은 찾는 손님 태반이 일본관광객이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고작 수학여행 온 시골학생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더구나 그 단체학생들의 관람태도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인솔교사의 뒤를 따라 진열장 앞을 한 줄로 서서 돌아 나간다. 말이 없다. 그리고 관람시간이 놀라울 정도로 짧다. 무리한 「스케줄」로 시간에 쫓기다 보니 별도리 없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볼때마다 시간을 초월한 기계로서 과거와 미래를 자유 왕래하는 「타임·머쉰」이 생각난다. 석기나 금관·고려자기들을 주마간산으로 보고 나가면 그대로 입구에서부터 「칼라·텔리비전」에 자기영상이 비쳐 나오는 전자전시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과연 이들 머리에 남게 되는 우리의 전통문화란 어떤 것일까. 혹시나 이들이 고도로 발달된 서양의 과학문명에 압도되어 우리의 것을 경시해 버리게 되지나 않을지. 『선생님, 그건 기우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의 조상이 얼마나 훌륭한 문화를 창조했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하는 어떤 또렷또렷한 시골 중학생의 대답이 듣고 싶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심정은 아닌 것이다.
근래 공주 무령왕릉의 발견과 경주 155호분 발굴 등으로 「매스컴」에 힘입은바 크겠지만, 박물관이 경복궁 내 신관으로 이전해 온 뒤 손님이 현저하게 많아졌다. 따라서 관람객들의 요구사항도 늘어났는데 그 대부분은 진열을 좀 더 설명적으로 해 줄 수 없느냐, 즉각 시대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도록 입체 전시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제한된 공간에 장구한 시일에 걸친 많은 유물을 보여주자니 별도리가 없으며 그건「유럽」이나 일본서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그들은 음악회·영화감상회·「파티」 등을 열어 사회와 부단한 연관을 맺는데 힘쓰고 있다. 그래서 관람객을 되풀이해 이끌어 들여 스스로 흥미를 갖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것을 열어 보았더니 과연 효과가 크다.
이는 바로 「움직이는 박물관」이란 새 경향이며 사회 속에 파고들어 기능을 다하자는 뜻이다.
사회에 파고드는 활동 등 가장 으뜸 가는 것은 음악회나 영사회가 아니라 특별전시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광범위하게 벌이기보다는 현대인의 기호에 맞춰 세분된 기획전이다.
전자전시회를 보고 느낀 것이지만 유물전시도 예술적인 면만이 아니라 보다 더 세분된 발달과정을 차례차례 보여주는 체계 있는 전시회를 자주 마련하겠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법만이 현대에 있어서 박물관이 사회와 끊임없는 유대를 갖고 발전하는 길이요, 또한 사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활동이 본격화되면 석기를 보다가 「칼라·텔리비전」을 보는 시골학생들도 결코 어리둥절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병삼<국립중앙박물관 고고과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