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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제2장 일본 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제5화 북해도 한인 위영탑의 엘레지(5)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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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삽보로」(찰황)에서 국제공항이 있는 「지도세」(천세)시를 거쳐 곧장 남쪽 태평양 연안까지 내려와, 해안선을 따라 실란·함관에 이르는「하이웨이」는 장장 6백㎞에 달한다. 「도남관광도로」라는 이름 그대로, 이 길은 그 연도에 2개의 국립공원과 1개의 도립 자연공원을 포함한 무수의 절경 속을 뚫고 달린다.
다음 목적지인 「노보리베쓰」(등별)를 향해 하오6시 「삽보로」를 떠난 자동차는 때마침 만월의 보름달을 머리 위에 이고, 평균시속 1백㎞의 쾌속을 냈다. 광막한 석수평야의 맨 아랫부분에 위치한 천세국제공항 주변의 휘황한 불빛 바다를 지나면서부터는 밤중에도 귀기를 느끼게 하는 심산유곡의 연속. 여름인데도 오싹하는 한기가 솟는다. 멀리 달빛을 받고 반사하고 있는 「시곡고」(지홀호)의 잔잔한 수면이 「시루엣」을 그려, 자칫하다간 호수의 정에 끌려 들어갈까 두렵다.

<남녀혼탕 풍습 그대로>
잠시 발을 멈춰 소요하고 싶은 유혹에 끌렸으나, 계속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갈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등별」은 동양최대를 자랑하는 남녀혼탕 온천장이 있는 곳이다. 전세계적으로 「섹스」개방의 물결이 굽이치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대중목욕탕에 남녀혼욕의 풍습이 그대로 남은 곳은 아마도 일본뿐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 등별의 남녀혼탕 온천장풍경을 보고서는 그저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다. 넓이로 치면 아마 2백 평도 더 돼 보이는 대 욕조 속에 아무 스스럼없이 수십 명의 남녀가 함께 몸을 담그고 있는걸 보고서는 「섹스」고 뭐고 간에 그저 인간세계의 기괴를 다시 한번 느낄 수밖에 없다.
「노보리베스」라는 지명부터가 「아이누」어의 「누뿔·베쓰」, 즉 「색깔 짙은 물이 솟는 강」이라는 뜻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고장은 아득한 옛날부터 「아이누」족이 살던 곳으로, 그 당시부터 짙은 유황천이 솟아 흐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이 고장일대는 일본에서도 첫 손꼽히는 호화스런 시설로, 수많은 욕탕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한발짝 발을 옮겨 근처의 사방령계곡(「시옥곡」이라 부른다)에 이르면 야산 허리 군데군데에서 짙은 황색의 연기가 솟아오르면서 독한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로 여기에 「아이누」족들의 마을인 「아이누·고탄」이 있는 것이다.

<우리 닮은 돗자리 짜기>
북해도에서 가장 큰 「아이누」족 부락은 간밤에 지나온 백로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 등별의 「아이누·코탄」은 주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생활실태를 보여주기 위한 인위적인 마을이다. 이 「아이누·코탄」이 있는 경사도 60도가 넘는 험준한 산, 사방령의 산꼭대기까지는 20여 분간을 「로프·웨이」의 「케이블·카」가 실어다 준다.
지붕뿐만 아니라 벽까지도 볏짚으로 엮어서 세운 가옥들이 여러 채 늘어섰고, 집안에서는「아이누」족 노인들과 여자들이 실제로 사는 모습을 돈 받고 공개한다. 우리나라의 화문석 짜는 것과 아주 닮은 방식으로 꽃무늬 돗자리를 짜는데, 그 재료는 북해도 특유의 나무껍질을 벗긴 섬유라고 한다.
주위에 얼마든지 있는 통나무들을 이용해서 만드는 목세공 수예품들이 다채롭고, 곰(웅) 가죽으로 만든 옷가지들을 팔기도 한다. 대만의 「우라이」(오내)계곡에 가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그곳 원주인종인 고사족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그들의 전통 민속춤을 보여주거나,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곳 사방령 산 속에 마련된 「아이누·코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 역시 대만의 그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멸종돼 가는 고립인종들에게 몇 푼의 생활비를 벌게 하는 대신, 수많은 관광객들로부터 거둬들이는 막대한 수입으로 큰 재미를 보고 있는 일인기업가들의 회심의 미소를 보는 듯하여 결코 유쾌할 수만은 없는 심경이다.
이곳 「아이누·코탄」바로 곁엔 또 하나의 북해도 명물 「곰 목장」이 있다. 북해도 산 백곰들은 그 성질이 포악하기로 이름나 있는데, 어린 새끼 곰을 잡아 길러, 순화시킨 다음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때로 이 곰들은 그 사나운 본성을 발휘, 사람들을 물어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곳 관광객들은 곰 아닌 바로 자신들이 쇠창살 우리 속에 들어가야 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실속은 ×놈이 차린다』는 속담을 불현듯 상기했다. 멸종돼 가는 「아이누」 족들이 이곳 「아이누·코탄」에서 보여주고 있는 재주(?)는 실상 이 곰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이 비극적인 희극의 무대에는 북해도 개척을 위해 피땀 흘리고 쓰러져 간 한인들도 꼭둑각시로 등장하고 있다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이 될까.

<한인 주상륙지인 실란>
「아이누·코탄」에서 느낀 감회야 어쨌든 취재「팀」의 발길은 바쁘기만 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나머지 4백㎞를 달려 밤중에 떠나는 청함 연락선을 놓쳐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도중 실란에 들러 한 가지라도 더 많은 얘기를 들으려 했으나 허행이 되고만 것이 안타깝다. 태평양전쟁 중 강제로 끌려오게 된 한인들이 첫 발을 디딘 주상륙지요, 또 이곳 군수공장에서 일하다 불구자가 된 수많은 한인들이 산채로 구덩이 속에 묻힌 곳이 바로 이 실란이기 때문(본 연재 제22회 김달선씨 증언 참조)이다. 사전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간 허물도 있지만, 민단지부에는 지부장 부인인 일본여인 외에는 아무도 사람이 없어 그대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실란에서 「다데」(이달)시를 거쳐 「오샤맘베」(장만부)시까지 곧장 서쪽으로 뻗은 「하이웨이」는 여기서부터 다시 거의 직각으로 꼬부라져 남쪽으로 함관항까지 내닫는다. 이 연변 역시 지홀·동야국립공원·대소국정공원 등으로 지정 돼 있는 절경의 연속이다. 1943년부터 다시 45년까지의 3년간에 걸쳐 별안간 분화를 일으켜 평지에 표고 4백5m의 높은 산을 치솟게 한 이른바 「소화신산」이 있는가 하면, 또 수㎞에 걸친 호면을 맴돌면서 그 깊고 잔잔한 호수에 울긋불긋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호화로운 별장·「캠프」시설들의 모습은 모두가 북해도다운 여정을 북돋워 준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풍광 속을 차를 몰아 홀로 질주하는 기자의 가슴속에는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허전한 공동만이 자꾸만 그 넓이를 더해 가는 것이었다. <차항 끌>
◇부기=본 연재 『북해도 한인 위령탑의 「엘레지」』와 관련하여 부산시 동래구 청룡동 소재 재단법인 부산영원 이사장 정기영씨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왔다.

<보상 길 막힌 전몰자도>
즉 태평양전쟁 중 일본의 학병·징병·징용 등으로 강제 동원되어 각처에서 전몰했거나 억울한 희생을 당한 한인들의 유골 수습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동 재단법인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1945년8월15일의 종전 당시 일본에 생존해 있던 한국인 학도병은 4천3백85명이며, 이 안에는 북해도 지구에 배속되었던 한인 지원병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이들 중 약1천2백명은 그해 8월24일 모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 일본의 「마이즈루」(무학)항을 떠난 귀국선을 탔으나, 출항 직후 기뢰에 접촉, 전원 비참한 최후를 마쳤으며 이 희생자의 유골 가운데서 수습이 된 것은 고작 5백19주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 당국의 선처가 요망되는 것은 이들의 전몰 일자가 해방 후인 1945년8월15일이기 때문에, 소위 『전몰자 신고법』에 의한 신고를 받지 않아 그 유가족들에게 대한 보장의 길이 막혔었다는 점이라 했다. 형식적으로는 물론 태평양전쟁의 종료일자가 8월15일이지만, 이들 또한 전몰자의 대우를 받아야 마땅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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