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구덕산 기슭의 함성…젊음을 태운다 54회 전국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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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년만에 지방개최의 길 튼 셈>
한반도의 남단항구도시 부산구덕산 기슭에 민족의 성화가 불타올랐다.
반세기를 뛰어넘은 쉰 네 해의 나이테를 아로새긴 민족의 대제전 전국체육대회가 12일 펼쳐진 것이다.
구덕산 기슭에서 편 민족의 「하머니」는 겨레의 번영과 통일의 염원을 기원하며 17일까지 엿새동안 전국 곳곳으로 메아리져 나갈 것이다.
「미와 기의 제전」전국체육대회가 항도부산에서 다시 열리게 된 것은 제38회 대회이후 16년만에, 그리고 1965년 제46회 광주체전이후 8년만에 지방개최가 이루어진 것이다. 「스포츠」인구 저변확대와 협동·단결이라는 과제를 안은 민족의 향연이 7년 동안 줄곧 서울에서만 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방체육 시설의 빈약, 체전의 비대 등으로 지방개최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기피현상을 탈피하고 전국순회개최를 위해 요구되고 있는 것은 외적 화려보다는 내적 충실.

<5천명의 카드·섹션 서울능가>
보무 당당한 입장식·통일된 「유니폼」의 물결도 중요하지만, 세계무대로 웅비하려는 겨레의 알찬 수확이 더한층 필요했다.
구덕산기슭에 울려 퍼진 이번 체전은 제자리걸음 속에서 타성과 형식의 연례행사로 그쳤던 비대 체전을 「스포츠」소년대회로 분리하여 7년만에 지방순회의 길을 튼 것이다.
지방개최에 따른 의구심을 일소했을 뿐만 아니라 빈약했던 체육시설을 보완, 확충하여 전국규모대회를 지방에서 소화할 수 있다는 발전적 양장의 첫 주자가 됐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에서 간곡한 체전개최의뢰를 받았을 때 부산시는 어려움이 많았다. 경기장은 물론 숙박시설·교통·통신 등 모든 여건이 너무나 곤경뿐이었다.
그러나 서울의 체전만에 그치고 있는 전국체전을 민족의 「하머니」로 이끌어야한다는 역사적 사명감 속에서 부산시민들이 발벗고 나서 새 전환점을 이룩하고 만 것이다.

<민간자본 3억들인 수영장도>
구덕 종합경기장 「메인·스타디움」을 5억4천만원을 들여 총면적 8천3백76명(서울운동장 1만5백43평)으로 확장, 서울운동장과 같은 2만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머드」경기장이 부산시의 노력으로 웅자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여기에 2천2백26평의 잔디를 심고 가꾸어 「그린·필드」를 이뤘고 5개의 「나이터」조명등 시설까지 완비, 구덕 종합경기장은 면목을 일신하고 전국의 건각들을 맞아들인 것이다.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경기장은 성지곡 수영장. 3억원의 민간자본으로 준공된 이 수영장은 체전에서 사용된 최대규모의 민간시설이다.
또 서울의 전유물처럼 되어있던 「카드·섹션」도 훨씬 다채롭고 화려하게 꾸며 입체각과 율동 감을 살려 전국민의 격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개회식에서 환성과 갈채를 모은 「매스·게임」도 「카드·섹션」과 함께 고달픈 노력과 인내의 결실이었다.

<3시간씩 50일간 각고의 연습>
남일·대신 국민교 1천2백 명의 고사리 손들이 펼친 연합「매스·게임」은 체전개최상징인 부산 탑과 동백꽃을 수놓았고 남북으로 갈렸던 어린이들이 다시 한데 뭉치는 등 어린이들로서 힘든 규율과 통일을 가져왔다.
이 지도를 위해 한옥주 교사(성동국민교·33)는 지난 6월부터 여름방학도 없이 매일 3시간을 싸워왔다. 「번영의 꽃」을 보여준 부산여고 1천5백 명의 「매스·게임」도 김부자 교사지휘아래 6월부터 매일 방과 후 3∼4시간씩 쌓아 올린 각고의 결실.
김 교사는 그동안 전국체전을 수년동안 지켜보면서 언제고 부산에서 체전이 이루어 질 때는 독특한 상징을 하겠다고 숨은 연구를 거듭해 왔었다.
극치의 조화미를 보여준 중앙·은하·계성여중 4천2백 명의 「스탠드·매스·게임」(카드·섹션)의 고충과 애로는 더욱 커 안타까웠을 정도.

<원색분류에 시력 잃은 교사도>
총 경비 3백만원으로 하루 2시간씩 50일을 땀과 짜증과 싸워 이긴 것. 서울 한성여고가 7년 동안 보여준 「카드·섹션」 2천8백명 보다 1천4백 명이 더 많은 인원수이며 화면 수 1백7종, 3백24「컷」으로 그 중에는 이동화면 24종 1백52「컷」.
찌는 듯한 삼복무더위와 싸워 이겨야했고 3개교 연합 단을 매일같이 「시멘트」가 덜 굳은 「스탠드」에서 공사 감독과 싸워가며 연습해야 했었다.
지도교사 배동준씨(39)는 은하여중에서 중앙여중으로 옮겨 3개월 동안 3천3백 방안이 든 대장을 4백20장이나 도안하고 색을 분류, 끝내는 난시가 되어 제자들로부터 선생님보호운동이 벌어지기까지 하고있다.
이와 같이 이룩된 사상최대규모의 「카드·섹션」과 「매스·게임」 등 민족의 성전은 숱한 숨은 노력과 피땀이 흐른 결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금년 「유고슬라비아」에서의 탁구제패, 「모스크바」하늘에 울린 「코리아」의 감격을 잊지 않고 있다. 구덕산기슭에서 펼치는 함성은 이제 또 하나의 비약을 위한 발판이어야 하겠다. [글 이근량기자 사진 김택현기자<부산=체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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