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을 대신한 결산심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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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사상 본격적인 결산심의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됐다.
여야의원들은 없어진 국정감사에 대신해서 72년도 결산과 예비비사용을 철저히 파헤치려는 자세로 소관상임위심사에 나섰다.
그러나 자료미비와 요령부득으로 당초의 결의에 비해 미흡했다는 평가들이다.

<예비심사 거의 질의로 메워>
정책질의는 앞으로 있을 새해예산안 심의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13개 상임위는 예외 없이 이틀간의 예비심사를 대부분 질의로 메웠고 재무위 같은 데서까지 계수의 분석 없이 질의만 하고 원안대로 승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의원들이 질의에서 지적한 것도 대부분 감사원 검사에서 지적된 것들.
그래서 과거의 국정감사에서는 굵직한 비위가 폭로되기도 했었는데 이번 결산심의가 미지근했다는 자평이 야당의원들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신민당의 오세응 부총무는 『막상 결산심의를 끝내고 보니 별로 파헤친 점이 없는 것 같다』고 돌이켰고 많은 의원들은 『자료부족과 심의시간의 제약 때문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실토.
여야의원들은 자료부족에 대한 불평을 각 상임위전문위원들에게 학살을 돌려 심사보고가 부실하다고 꾸짖은 일이 많았는데 김보환 예결위전문위원은 12일 예결위에서 종합심사보고를 통해 결산을 제대로 심의하기 위해서는 △예결위를 상설화하고 △결산보고에 전년도 지적사항에 대한시정조치를 포함할 것 △결산과 예산안심의기간을 분리할 것 등 제도적 개선방안을 제시해서 주목을 끌었다.

<여당서도 자료부실을 개탄>
『국회경시』-9대 국회에 들어와 많은 의원들이 입에 올리는 말이다.
해산됐다가 다시 구성된 국회가 국정감사권이 상실되고 국무위원출석·자료요구 등 대 행정부 발언권이 대폭 줄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장관의 출석여부와 답변태도에 민감한 반응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국회경시 때문이라고 한탄한다.
12일 예결위질의에 앞서 최성석 의원(신민)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돈을 거둬들이고 쓴 장관들이 출석치 않은 것은 국회경시요, 국민경시 때문』이라고 화를 내 30분간 정회됐다. 8명의 장관이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정회동안 김주인 위원장의 독촉으로 유 국방·서 총무처장관이 달려와 속개는 됐지만-.
농수산위의 경우 정운갑 의원(신민)은 정조영 장관이 취임한지 상당한 기간이 지났어도 인사한마디 없다고 섭섭해했다.
국회에 대한 행정부의 섭섭한 태도를 거론하는 것은 야당의원만이 아니다. 공화당의 신형식 재무위원장도 행정부자료의 부실함을 들어 『근래 유신을 빙자하여 국회의 성실한 태도를 외면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답변내용과 태도도 문제다. 상공위의 한병채 의원(무)이 72년 중 체결한 통상조약건수와 국회동의여부를 물은 데 대해 이낙선 장관이 『72년 중 3건인데 국회동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 내무위의 김수한 의원(신민)은 『중대한 치안문제가 생기면 종래에는 장관이 수시로 상임위에 보고해 왔다』면서 최근 정부의 국회경시를 나무랐다.

<"신문 안 봐도 다 알고 있다">
이번 결산심의에서는 결산이나 예비비지출과는 직접 관계는 없지만 학생「데모」와 언론정책 등 최근의 시국과 관련된 문제가 크게 논란되어 주목을 끌었다.
문공위는 10, 11일 이틀에 걸쳐 학생「데모」에 대한 정부조처와 이와 관련한 언론보도 등을 문제삼았고, 내무위도 10일 학교에 경찰력을 동원한 사실을 따졌다.
질문과 답변을 추려보면…
질문=△민 문교장관이 각 대학 총 학장들에게 보낸 공한에서 학생시위를 반정부적인 중대한 범과인 것처럼 말한 것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이상의 사법적 중벌을 학생들에게 가해야한다는 의사를 간접으로 표시한 것이 아닌가.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 어떻게 중죄인가.(채문식 의원) △반정부가 어떻게 반 국가와 같은가. 야당도 정부시책을 비판하고 반대하고 있으며 국민 누구나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지 않는가.(신도환 의원) △학생들의 주장가운데 어느 대목이 반정부 또는 반국가적이며 경찰이 교내로 들어간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법의 판결이 나기 전에 학생들을 제적 조치하는 근거는 무엇인가.(김경인 의원)
답변=△이번 학생시위사건은 종래와는 달리 과격한 양상을 띤 것이다.(민관식 문교) △서울대생의 시위사태는 두 차례에 걸쳐 질서회복을 시한 통보했으나 되지 않아 결국 총학장의 요청에 의해 경찰력을 동원, 질서를 회복하고 관련학생들을 연행, 조사했다.(김 내무) △총학장에게 공한을 보낸 것은 학생들의 선도를 당부하는 뜻이었으며 학생처벌에 관해 대학에 전혀 지시한 사실이 없다.(민 문교)
질문=△우리 언론이 중대한 국면에 있다. 서울의 지식인들은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우리신문보다 외국의 신문·잡지·방송을 통해 아는 경우가 많으며 지난 2일에 일어난 학원사태가 8일에야 보도됐는데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이 「데모」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태가 언론의 자율적인 행위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무능력 또는 무위에 의한 것인가, 어떤 힘이 작용한 결과인가. 힘이 작용한다면 그 요인은 무엇이며 그것을 제거할 용의는 없는가.(채문식 의원)
답변=△언론자유는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언론자유는 국가가 처한 여건과 사회여건에 크게 좌우되며 국가존망보다 언론자유의 절대적인 확보가 앞설 수는 없다. △다른 자유와 마찬가지로 언론자유도 성역일 수 없으나 우리가 처해있는 국가여건이 국민에게 인식되고 언론도 최대한의 사명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언론창달에 힘쓰고자 한다.(윤 문공)

<"80년대 좋아하네〃 진문·기답도 많고>
질문·답변에는 진문 기답이 있기 마련. 문공위에서 김경인 의원(통일)은 『추석 때 선거구에 내려가 선거구민들에게 방송으로 인삿말을 하려고 했으나 방송국에서 허가해 주지 않아 못했다』는 불평을 질문에 연결시켰는가하면 『정부에서 주는 훈장이 국산이냐 수입품이냐』『결산개요 서에 오자가 많다』는 등 사족 같은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한 것이 그것.
재무위에서 이택규 관세청장은 『밀수가 언제 근절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80년대에는 근절될 것』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다 이중재 의원(신민)이 『80년대 좋아하네. 60년대에는 70년대에 가서 풍요한 사회가 된다더니 70년대에 오니까 밀수도 80년대 가면 없어진다고 하기냐』고 다그쳐 진땀을 뺐다.
이번 결산심의에서 몇몇 행정부국장들이 정부위원자격으로 보충답변에 나선 것도 전에 없던 새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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