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드는 냉방 법|권령대 <전 서울대 교수·물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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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방도 「완전 냉방」이 되어 있지 않으면 손님이잘 들어가지 않나 보다.
웬만한 「빌딩」가는 으례 냉방이 되어 있고 문도 자동문으로 되어 있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빌딩」가를 걸어가노라면 찌는 듯한 뜨거운 바람이 보도로 내 뿜겨지는데 놀라게 된다. 집안에 있는 몇 사람이 시원하게 지내기 위하여 길로 지나다니는 몇십 몇백 명이 이유 없이 뜨거운 김을 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이야기다.
올같이 섭씨 35도를 넘는 더위가 며칠씩 계속되면 누구나 냉방에서 지내고 싶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바람에 「에어콘」이 동이 나서 부르는 게 값으로 뛰어 오르는 소동이 벌어져도 별도리가 없게 된다.
아직도 냉방은 서민들에게는 사치스러운 일이다. 구공탄 두개로 난방이 되 듯이 값싸게 냉방도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방법이 있긴 있다. 집을 한번 지어놓으면 다시는 돈 한푼 안 들이고 시원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늘은 파랗게 보이나 실은 파란 빛 보다도 파장이 몹시 긴 열선이 함께 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장이 8「미크론」에서 13「미크론」사이의 열선은 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하늘은 이 8「미크론」에서 13「미크론」에 이르는 구멍이 뚫려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 알기 쉽게 말해서 만약에 8「미크론」에서 13「미크론」까지의 광선만 통과시키는 유리가 있다고 하고 이 유리로 지붕과 천장을 만들어놓으면 방안에서는 8「미크론」에서 13「미크론」까지의 광선이 밖으로는 자유로이 나갈 수 있으나 하늘에서는 이 부분의 광선은 오지 않으니까 결국 밖에서는 일체의 광선이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방에서만 8「미크론」에서 13「미크론」사이의 광선이 일방 통행으로 밖으로 나가게 되어 방은 저절로 식어간다는 것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이는 내가 물리학적으로 그럴싸하게 속임수를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는 아 그렇다면 그런 유리 「필터」를 만들면 될 터인데 왜 안 만드느냐고 독촉을 할지 모른다. 실상 나는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니고 그런 유리 「필터」만 만들면 틀림없이 냉방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좀더 어렵게 말해서 열 역학 제2법칙에도 어긋나지 않는 진짜로 합리적인 냉방법인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남은 문제는 8「미크론」에서 13「미크론」사이의 열선만을 통과시키는 유리 「필터」를 어떻게 만드느냐다. 이런「필터」를 실제로 만들어서 실험해본 사람들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작은 상자로는 실험하는데 성공하였어도 아직 집을 짓고 실험해본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붕을 덮을 만큼 큰 유리 「필터」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리 「필터」를 만들려면 유리 표면에 금속이나 어떤 무기 물질을 극히 얇게 진공 증착 시켜야 하는데 사진 「렌즈」 같은 것은 만들기 쉬워도 큰 유리판에 증착을 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 비싼 냉방기를 사다 쓰는 생각을 하면 한번 이 유리 「필터」를 만들어 봄직도 한데 용기 있는 희망자는 없는지? 구멍 뚫린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필터」 지붕 생각이 나건만 그놈의 증착이 문제란 말야.

<필진이 바뀝니다>
「파한잡기」 필진이 바뀌었습니다. 그 동안 수고해주신 노강희 (서울대 환경 대학원장), 이기택 (연세대 교수)· 박상윤 (성균관대)·민희식 (이화여대) 제씨에 이어 권령대 박사 (전 서울대 문리대 교수·물리학) 장선영 교수 (한국 외국어대·「스페인」문학) 한병삼 과장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과) 고광우 검사 (서울지검) (사진 상우로부터) 가 새로 글을 써주시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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