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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빼고 한국만 … 교황 파격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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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브라질에서 원주민을 만나 그들의 전통 모자를 쓰고 웃고 있다. [로이터=뉴스1, 중앙포토]

한국 천주교계에 축복의 눈이 내린다. 어쩌면 그 눈이 이중주가 될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 8월 한국을 찾는다. 25년 만의 방한이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한국만 방문한다. 이에 앞서 로마 바티칸에서는 2월 22일 새로 지명된 추기경에 대한 서임식이 열린다. 새 추기경 명단에 한국의 주교가 포함될지 기대된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2006년 정진석 추기경이 서임될 때도 국가적 경사였다.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처음으로 ‘2인 추기경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세계 천주교 지형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2009년 2월 김 추기경의 선종 이후 한국 천주교계는 줄곧 ‘새로운 추기경’을 기대했다. 쉽진 않았다. 추기경 서임은 한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천주교계에서 추기경 수를 따지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정진석 추기경이 은퇴했다. 지금은 현역 추기경이 없는 상태다. 올해 또 한 명의 추기경 서임에 대한 기대감이 남달리 높은 이유다. 추기경을 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교황의 고유한 권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는 직접적 이유가 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는 8월 13~17일 대전시와 충남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아시아의 젊은이여 일어나라!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추고 있다(ASIAN YOUTH! WAKE UP! The Glory of the Martyrs Shines on You)’. 대전교구가 이번 행사를 맡은 데는 큰 의미가 있다. 대전교구는 조선시대 교우촌으로서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의 탄생지(충남 당진 솔뫼마을과 충남 청양 다락골)를 관할한다. 또 1만여 명의 순교자가 나온 땅이다. 이번 대회는 ‘제3회 한국청년대회’를 겸해서 열린다.

1984년 5월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함께 절두산 성지를 참배한 모습. [로이터=뉴스1, 중앙포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7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도 참석했다. 이동수단으로 제공된 방탄차를 거부하고, 차량 위 천장이 개방된 지프로 이동하는 등 유연하고 파격적인 언행에 신자들이 열광했다. 교황의 숙소도 방 2개짜리가 제공됐지만 교황은 거절했다. 그를 수행하는 추기경 30여 명과 같은 크기의 방에서 묵기를 자청했다. 침대와 의자, 테이블과 냉장고가 놓인 조촐한 방이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도 교황이 또 어떤 식의 검소하고 소탈한 인간적 면모를 보일지 기대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은 단순한 파격이 아니다. 대중의 인기를 의식한 쇼적인 행동과 차원이 다르다. 그의 파격에는 그리스도를 향하는 깊은 영적 지향이 있다. 그런 지향 앞에서 천주교의 딱딱한 격식과 절차가 종종 치워질 뿐이다. 지난해 성탄 예배 때도 그는 아기 예수상을 두 손으로 직접 들고 걸었다. 관례상 수행하는 이가 아기 예수상을 든 채 뒤에서 따르고 교황은 몇 발 앞서 걷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전례를 아무렇지도 않게 깨버렸다. 대중의 눈에는 대단히 자유로워 보였다. 그럼에도 어지럽지 않았다. 그에게는 분명한 지향이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향해 걸을 것인가를 온갖 어록과 행동을 통해 오롯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먼저 내딛는다. 예수회 출신인 그는 예수회 영신수련의 전문 지도자이기도 하다. 30일에 걸친 영신수련을 두 차례나 거쳤다. 그는 교황이기 전에,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이기 전에, 예수회의 사제이기 전에 구도자이고 영성가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리더십이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과 그를 구분 짓게 한다. 그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향해 걸어간다. 그리스도 영성의 넓은 품으로 좌우로 갈라진 세상을 보듬기 때문이다. 신자이든 아니든, 대중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에 새 추기경이 탄생할 것인가. 추기경 서임 후보로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와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등이 꼽힌다.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이 모두 서울대교구장 재임 중 추기경이 됐다. 그 점에서 염수정 대주교가 유력시된다는 관측도 많다. 김희중 대주교도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와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위원 등을 역임해 교황청에서 인지도가 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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