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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또 의원 해외출장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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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영국·프랑스·그리스·터키·벨기에·베트남·라오스·미얀마·말레이시아….

 현재 출국해 있는 국회의원들의 목적지만 해도 열거하기 어렵다. 1일 새벽 본회의에서 법안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한 많은 의원들은 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예산안 ‘지각 처리’ 후 ‘외유성 해외출장’은 지난해 초와 판박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외유 논란에도 의원들은 귀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최근 정진석 사무총장을 통해 “국회 상임위원들이 산하단체 등의 지원으로 해외에 나가 외부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특별히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대만의 고등교육기관 방문 계획을 취소했고, 지난해 남미·아프리카 외유 논란을 빚었던 예결위는 올해 아예 1억원 안팎의 해외출장 예산을 불용 처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일부에 그쳤다. 법사위 박영선 위원장은 같은 당 박범계 의원,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등과 함께 4일부터 닷새간 일정으로 미얀마와 말레이시아를 방문 중이다. 법무부 장관 면담, 이슬람 법문화 탐방이 주 목적이다. 농해수위 최규성 위원장도 같은 당 김우남 의원과 함께 동남아 지역에 우리 농산물 기술과 노하우를 보급한다는 목적으로 베트남과 라오스를 찾고 있다.

 정무위 새누리당 김재경·강석훈 의원, 민주당 강기정·김기식 의원은 5일부터 영국·벨기에·프랑스 금융감독기구를 방문하고 있다. 운영위 소속 일부 의원은 6일 오후 비행기로 출국해 7박8일간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외통위원장인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일부 기재위, 복지위원들과 함께 우리 정부의 ODA(공적개발원조) 지원 현장 점검을 위한 동남아 지역 방문 등 줄줄이 해외 일정을 잡아뒀다.

 지금의 원내대표인 원내총무의 영향력이 막강하던 1990년대만 해도 의원들의 해외출장은 원내행정국의 허가가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의원들은 해외에 갈 때도 연락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원내행정국에 일정과 사유, 연락처 등을 신고하는 정도다. 외유 논란이 해마다 반복되자 이 같은 ‘신고제’를 다시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몇 의원은 언론과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려 해외출장 자체를 숨기려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양산할 수 있다. 차라리 국회 홈페이지에 당당하게 출장 일정과 내역을 공개하는 건 어떨까. ‘누명’도 벗고 ‘의원 외교’의 중요성도 부각시키는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