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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띠 효과 … "교실이 모자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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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서초구 잠원초 장윤선(61·여) 교장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올해 입학생이 20% 정도 느는데 교실을 늘릴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재건축 아파트단지가 주변에 밀집한 이 학교에는 1~6학년 54학급에 1700여 명이 재학 중이다. 학부모 선호도가 높아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26.4명으로, 서울 평균(19.7명)보다 훨씬 많다. 장 영은 “현재 318명인 1학년이 새 학기에 380명으로 늘어날 예정이지만 교실을 늘릴 여력이 없다”며 “1학년 학급당 인원이 올해 5명 이상 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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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신입생 입학을 앞두고 일부 학교가 ‘교실난’에 빠졌다. 이는 좋은 학군을 찾아 옮겨온 학생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른바 ‘황금돼지의 해’로 불렸던 2007년 태어난 아이들이 올해 입학하게 되면서 1학년 절대수가 증가한 탓이 크다.

 쌍춘년(雙春年)으로 불리던 2006년 결혼 붐에 이어 ‘2007년 정해년(丁亥年)에 태어난 아이들은 재물운을 타고난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당시 출산율이 반짝 상승했다. 전년보다 4만5000명(10%) 많은 49만3000명이 그해 태어났다. 이들이 올해 초등학교 문을 두드리면서 지난해 7만7000명이었던 서울지역 초등학교 신입생이 8만4000명으로 7000명가량 늘어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 강남·서초구 초등학교들은 당장 교실 늘리기에 바쁘다. 서초구 반원초 조영철(57) 교장은 “8학급 263명이던 1학년이 올해 330명으로 늘어나지만 원래 과밀학교라 교실을 한 개밖에 늘리지 못한다”며 “학급당 인원이 33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6학년 교실 한 곳을 1학년용으로 바꾸기로 했다. 강남구 대도초 역시 신입생이 60명 이상 늘어 두 개 학급을 늘린다. 강남구 한 초등학교 교감은 “황금돼지띠 신입생을 맞느라 기존 특별활동 교실을 없애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교육 열풍이 강한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저출산 경향에 따라 그간 취학아동 수가 줄어왔는데 올해는 2007년생들 때문에 강남지역 등 일부 초등학교에선 신입생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금돼지띠 아이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7년 딸을 낳은 황모(39)씨는 “아이가 자라는 시기에 맞춰 온라인쇼핑몰에서 파는 기저귀도 해당 연령대 크기가 조기 품절되더니 요즘은 겨울 코트를 사주려고 해도 딱 그 또래 애들 사이즈가 빨리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만 5세가 돼 유치원 진학을 앞두고 있던 2011년 말에는 평판 좋은 영어유치원에 등록하려고 부모들이 접수 전날부터 밤새 줄을 서 기다리는 ‘입학 전쟁’이 벌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여파가 고스란히 옮겨와 지난해 말 전형이 치러진 서울지역 사립초 경쟁률은 2.5대 1로, 최근 5년래 가장 높았다.

 또래 아이 수가 많은 탓에 벌써부터 진학과 대학입시, 취업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우려하는 학부모도 많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이모(35·서울 성동구)씨는 “아이가 입시를 치르거나 취업할 때 경쟁이 심해 더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 교육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황금돼지띠 아이들과 한 살 위아래의 두 자녀를 둔 박모(37·경기도 의정부시)씨는 “큰애가 재수하면 돼지띠들과 경쟁하고, 돼지띠들이 재수하면 둘째 아이와 겨룰 것 아니냐”며 “이래저래 걱정스럽다”고 했다. 김모(35·충남 천안)씨는 이 같은 우려 때문에 2007년생 자녀를 또래보다 1년 일찍 입학시키기도 했다.

 유통업체들은 특수를 기대한다. 한 아동용 가방업체는 한 해 평균 아동용 캐릭터 가방을 2만5000~3만 개 정도 만들어 왔지만 올해는 입학 시즌을 대비해 생산량을 20~25% 늘렸다. 이마트 황종순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황금돼지띠 수요를 고려해 새 학기 문구용품과 책가방 등의 물량을 늘려 기획전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제3의 베이비붐’으로 불리는 황금돼지띠 현상은 새로운 출산 트렌드를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연세대 류석춘(사회학) 교수는 “과거에는 전쟁 후나 호황기 때 아이를 많이 낳아 ‘베이비붐 세대’가 출현했지만 지금은 자녀를 한두 명밖에 안 낳기 때문에 언제 출산할지가 이슈가 됐다”며 “띠가 좋다는 해나 월드컵 때처럼 이벤트성 베이비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고령화·저출산 시대와 맞물려 출산 시기를 고려하는 트렌드에 맞춰 복지시스템을 세밀하게 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탁·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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