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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는 소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6세 소년의 살인강도사건에 이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요즘의 소년범죄는 우리사회를 울리는 거다란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소년들의 범행 동기가 명절을 앞둔 가난과 고독에서 빚어진 것이며 특히 어느 수입영화에서 수법을 본뜬 것이라 한다.
다섯 살 어린 나이, 아직 입에서 젖내가 가시지 않은 어린 것이 부모를 여의고 이 세파에 떠돌기 10년,「부모와 함께 거리를 걸어가는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다』는 소년….쌀밥과 포도와「사이다」가 먹고 싶어 운전사를 협박하려다 그만 겁결에 찔러 버렸다는 소년, 거듭거듭 시달리는 경찰의 취조에도 끝내 한 방울의 눈물을 보이지 않는 그 소년….
진실로 이 16세 소년의 철저한 무표정은 바로 선악마저 마비된 이 사회의 무표정 무감각의 반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리의 가게마다 눈부시게 쌓여 있는 과일더미와 콜라·사이다의 진열과 그 많은 식당들에서 풍기는 음식냄새는 어린 소년의 주리고 목마른 식욕을 얼마나 더하였겠는가?
추석이라 하여 값비싼 상품권이 날개가 돋친 듯 팔린다는 신문의 보도들…. 그 숱한 상품권을 날라다 바치기에 세도가의 문전은 길이 닳아도 배고픈 소년에겐 흰밥 한 그릇에도 인색했던 이 사회는 차마 그 소년에게 돌을 던질 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야 할 일이다. 행여 내 자식은 국민 전체의 처지에서 지나친 대접으로 기르지나 않는가를….
나라의 일은 맡은 분들은 가슴에 손을 얹어 한번 더 생각할 일이다.
진정 코 국가의 복리를 위하는 것은 무엇부터 서둘러야 하는 것인가를….
예술을 맡은 분들도 소년의 무표정을 깊이 생각해야겠다. 어떤 글과 노래와 그림 그리고 어떠한 영화를 만들어 보여줄 것인가를….
나라와 이웃은 어떻게 되든 혼자만 치부하여 호화를 누리는 분들도 곰곰이 가슴에 손을 얹어 생각할 일이다.
「빌딩」의 숲이 하늘을 솟고 승용차가 홍수를 이루어도 흰밥과 포도가 먹고싶어 범죄 하는 소년의 마른 눈매와 밥을 달라고 보채는 어린 자식의 목을 조르는 상도동 어느 엄마의 가난의 절규가 함께 하는 이 하늘 아래선 진정한 행복을 누릴 국민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국가와 사회는 먼저 그 윤리와 사랑의 철학을 바탕한 우리 모두의 복리를 갈구하는 터전에서만이 개인의 행복도 진정한 성장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영도<시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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