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6)은행원이 왜 은행을 떠나는가|김영철<전국 금융노조 상업은행지부 위원장 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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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행을 떠난 은행원들…. 그들은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정들었던 은행을 떠나면서 아마도 이렇게 외쳤으리라『내 아들놈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은행원은 시키지 않으리라…』고. 요즈음 은행원의 이직률이 근래 보기 드물게 높다. 물론 과거에도 이유야 여하튼간에 은행원들의 이직은 간간이 있어왔지만 최근과 같은 집단이직현상은 금융가에서는 일찌기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같은 은행원 이직현상이 유발된 것은 그 동안 국내 유수 기업체들이 호황의 경기를 누리고 급속도로 신장됨으로써 앞을 다투어 증설 및 업세 확장에 진력한 결과, 이에 따른 다수의 인재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특히 그간 금융기관에 많이 모여있던 우수한 행원들을 이들 기업체들이「스카웃」해 가고 있는 외부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서, 은행 내부에서 은행원이기에 겪어야하는 은행원 개개인의 고달픔이 이제 극(極) 에 달한 나머지 이로 인한 젊은「엘리트」행원들이 직장으로서의 은행에 대한 매력을 거의 의식적으로 잃어가고 있는 점에 까닭이 있는 것 같다. 경제발전의 근간인 내자동원이라는 국가 지상목표를 수행하는 저축기관 종사자로서의 은행원들은 그 신분상의 제약으로 인하여 겪어야 하는 고층은 필설로 다 하지 못한다. 연 전에 있었던 금융정상화 운동은 금융기관의 예금유치·과당경쟁이라는 피치 못할 열풍 속에서 그 한계점을 느낀 은행원 자신들이 스스로 그 치부를 드러낸 정풍운동이었다는 점은 세인이 잘 아는 일이며, 이와 같은 사실은 은행원들의 고충이 어떠했던가를 명백히 나타내주는 것이라 하겠다.
밖에서 보는 은행원들은 보이는 그대로「화이트·칼라」처럼 깨끗할지 모르겠지만 그 내부에서는 극도로 지능화하고 거액화 한 은행금전 사고의 피해 당사자가 되는 심리적 불안을 안고 매일을 아니 매순간 순간을 살피고 지내야만 하는 삶인가 하면, 업무의 특수성에 비추어 정상 근무시간을 훨씬 상회하는 마감 후 업무취급이 거의 상습화 되어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퇴근시간을 잊은 은행원들은 실로 사색과 휴식시간을 빼앗기기 다반사이며, 급기야는 매주 수요일을『행원의 날』로 정하여 은행원 스스로 고객들의 설득에 나서 일찍 퇴근하기 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지극히 보수성을 지닌 은행은 승진기회마저 타 기업에 비하여 2∼3년은 늦는가 하면 최근 급여면에 있어서도 유수 기업체에 비하여 처져있는 상태를 감안하면 이러한 은행원 이직현상은 거의 자연 발생적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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