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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전 10회전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금 우리들의 회화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사태는 회화의 정신을 자기시대의 역사의식과 전혀 무관하게 하려는 움직임에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우리 화단에 추상양식의 회화가 아무런 비판 없이 도입됨으로써 한층 더 우려할 만한 사태를 조장하였다.
실제로「바우하우스」이래의「유럽」추상양식이 진정한 의미의 역사의식을 모색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적인 과정이었다는 것은 그들의 회화 사 세계가 보여주는 바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정신이 굳어짐으로 해서 그것 자체가 하나의 종착점인 것같이 오해됨으로써 구미의 현대화단이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터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우리들의 회화를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추상양식의 본래적인 예술의사를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진실을 말한다면 추상양식은 결코「휴머니즘」과 무관한 세계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구상양식으로 발전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그럴 것이 구상언어만이 삶의 구체적 내용과 총체적인 반응을 포착할 수 있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역사의식을 표상 화 할 수 있는 수단은 구상언어이며 자기시대의 순수한 삶을 옹호(창조) 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도 적절한 언어가 구상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나는 구상전의 활동을 오랫동안 주목해 왔다. 물론 이「그룹」이 구상적인 표현활동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들의 활동은 아직 혼미상태에 있다.
구상전이 10회전을 거듭하면서도 그 회원작품 속에서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특히 거기에 핵적 존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 방향타가 없음으로 해서 해마다 행사 적 업적에 만족하는 느낌이며 기술적으로 완숙해 있으면서도 역사의식을 표상 화하려는 적극적인 자세에 있어서는 오히려 공모작품에 뒤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구상 전에 기대를 갖는 것은 회원의 대부분이 자기의 분명한 세계를 지니고있으며, 그것이 구상양식의 정립이라는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배동신·김영덕의 변화는 주목할만한 일이었다.
박용숙<미술평론가·「공간」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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