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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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 작가 「솔제니친」의 웃는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그의 부인 「나탈리아」와 정답게 앉아 있는 사진에서도 그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부인만이 겨우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더부룩한 턱수염은 그의 우수를 더 한층 깊고 음밀하게 감싸고 있는 것 같다. 「솔제니친」의 집은 「모스크바」에서 1백수십㎞ 떨어진 한촌에 있다. 주위엔 야생목들이 멋대로 자라서, 집은 더욱 초라하고 황량해 보인다.
그 고장의 지방법원은 지난 3월 비로소 그의 이혼 소송에 종지부를 찍어 주었다. 3년이나 끌어온 소송이다. 따라서 지금의 부인과 합법적인 재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소송은 「솔제니친」이 「모스크바」로 이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계기도 된다. 부인은 현재 「모스크바」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은 그 소송이 지연되는 것을 구실로 사실상 한촌에 독신으로 유배되다시피 했었다. 소련 당국은 이처럼 그의 사생활에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그만 사건에 불과하다. 그가 필생의 역작으로 쓰고 있는 대하소설 『1914년8월』의 제2편은 소련 KGB(국가안보위=비밀경찰)의 집요한 방해로 집필에 여간한 고경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료 수집의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의 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직장에서 쫓겨나고, 사회생활의 제한을 받는다. 그의 처족들에게 까지 이런 제한은 예 외없이 적용되고 있다.
「솔제니친」은 최근 서방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눈물겨운 호소를 하고 있다. 『나와 내 가족들의 머리칼 한 올조차도 KGB의 동의 없이, 또는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떨어지지 않는다』-. 「솔제니친」이 「노벨」상 수상작인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비롯해 그의 모든 창작에서 한결같이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상황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의 체제 속에서 한 인간이 보잘것없이 몰락되고, 또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사고와 언어를 억압당하면 인간은 동물로 돌아간다』고 그는 「이반·데니소비치」의 입을 빌어 절규한 일도 있다.
그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바로 이런 신념에 대한 하나의 정치적 보복이다. 그는 서방기자들에게 『언젠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으면 암살 당한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작품 속의 세계는 바로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의 하루하루임을 설명한 것이다. 이런 위협과 공포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소련의 작가들이여! 한일이 무엇인가. 「스탈린」에게 찬사를 바친 것뿐이다』고 힐책한다.
그리고 자신의 창작세계를 생명처럼 지키고 있다.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죽음에 대한 생활의 투쟁에서 나를 지키고 싶다』는 그의 인생관이자 문학관에선 무서운 섬광이 번뜩인다. 죽음을 초월한, 한 작가의 양식은 새삼 세계의 자유인들에게 위안과 평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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